“배움은 인권이자 행복추구권” 성인 문해 교육과 만학 여성 평생교육에 헌신
“한글 못 읽고 못 쓰는 사람 모두 사라져서 학교 문 닫는다면 최고의 영광”

 

‘2015 올해의 교육인’에 선정된 이선재 일성여중고‧양원초등학교 교장은 20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학교에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학교 문을 닫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5 올해의 교육인’에 선정된 이선재 일성여중고‧양원초등학교 교장은 20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학교에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학교 문을 닫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나라에선 패자부활전이 쉽지 않다고들 하지요. 대학 졸업보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되레 더 받기 어려워요. 양원초등학교와 일성여중고는 만학도 여성들을 위한 학력인정기관입니다. 이런 일을 한 지 55년쯤 되는데 여성신문에서 인정해준 것 같아 대단히 고맙더군요.”

이선재(79) 일성여중고‧양원초등학교 교장이 여성신문사가 선정하는 ‘올해의 교육인’(교육부장관상)에 선정됐다. 이 교장은 배움은 인권이자 행복추구권이라는 철학으로 성인 문해 교육과 만학 여성의 평생교육 발전에 헌신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교육인’에 선정됐다.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성여중고 교장실에 들어섰더니 이 교장은 겨울방학 기간 중 학생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편지마다 정성이 배어 있었다. “세상은 배운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행복하다는 교장선생님의 격려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삶의 지표로 삼겠습니다” “칭찬 학생으로 교장선생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술상도 도전해보라는 말씀이 얼마나 따뜻하고 힘이 되는지 집에 가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60, 70대 할머니 제자들이 이선재 교장에게 보내온 편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0, 70대 할머니 제자들이 이선재 교장에게 보내온 편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글도 모르던 60, 70대 할머니들이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려간 편지는 달필이었다. 주름진 얼굴로 ‘가나다라’를 배웠을 그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애틋해졌다. 이 교장은 “1년에 보통 1000통의 편지를 받는다. 방학 2주일 동안에만 500통이 온다”며 “다 읽으려면 눈이 아파오지만 즐거운 비명 아닐까 싶다”며 웃었다.

하루 전 인터뷰를 위해 전화했더니 그는 “오전 7시부터 학교에 나와 있으니 아무 때나 오면 된다”고 했다. 하루에 세 번가량 마포구 염리동의 일성여중고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양원초등학교를 오가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 나이가 무색하다. 그는 “매년 1, 2월은 씨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라서 더 바쁘다”며 “예전에는 통행금지 시간 직전까지 일하다 퇴근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실향민(황해북도 개풍)으로 부모님과 남동생 한 명을 데리고 피란을 나왔다. 남한에 피붙이 하나 없었는데 그가 길러낸 제자가 5만2000명이 되니 제자 생각만 해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 교장은 “대학 총장들은 더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겠지만 학생 한 명 한 명을 직접 대면하며 가르치는 게 아니니 우리 학교와는 다르다”며 “한 명의 교육자로 5만2000명의 제자를 길러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교장실에는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 학교의 전신은 일성고등공민학교다. 6·25 전쟁 때인 1953년 개교했다. 교육열로 유명한 함남 북청 사람들이 피란 나왔다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처지가 안 되니 야학을 연 것이다. “국민교육운동을 펼친 이준 열사가 북청 출신인데 그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동향인들이 나선 거죠. 그래서 학교 이름도 이준 열사의 호를 따서 ‘일성’으로 지었지요.”

이준 열사는 생전에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무식이요, 천하에 제일 위험한 것은 불학(不學)이다”는 말을 남겼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3000개 이상의 학교를 세워서 글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국권을 수호할 수 있다며 교육운동을 펼쳤다.

이렇게 출발한 학교가 1960년 폐교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야학을 하던 20대 청년 이선재는 “일성고등공민학교가 노천 수업 중으로 폐교 위기에 놓여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급하게 학교를 찾았다. 그는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없어져서야 되겠느냐는 마음으로 왔다가 발목이 잡혀 지금까지 왔다”며 웃었다. 교육자 이세정 선생을 무보수 교장으로 초빙하면서 간신히 폐교 위기를 넘겼다. 교사로 일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이세정 선생이 작고한 후 1972년 교장을 맡았다.

“나도 10대 때 피란 나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공부했고, 딱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야학을 했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았지요. 그분들이 다 세상을 떠났으니 공부할 기회를 잃어버린 다른 사람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겼습니다.”

요즘 같은 첨단 세상에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비문해자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중학교 이하 학력을 가진 이들 중 여성이 80%가 넘는다. 이 교장은 “올해 양원초등학교 모집 정원이 300명인데 두 배가 넘는 700명이 지원했다”며 “오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나오지 말라고 하느냐. 그래서 체력검사와 건강검진을 해봐서 오래 버티기 어려운 이들은 빼려고 한다”고 말했다. 1950년대, 60년대에는 장남에게 밀려 공부할 기회를 못 가진 ‘후남’이들이 참 많았다. 집안 형편이 여유 있어도 딸을 도시로 유학 보내는 간 큰 부모가 많지 않았다.

이 교장은 “대학 나온 박사 아들과 초등학교도 안 나온 엄마가 무슨 이야기가 되겠느냐”며 “아들이 ‘엄마는 모르셔도 돼요’라고 해버리면 부모는 마음 상한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의 교육은 가정의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100세 시대는 배운 사람도 또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니 비문해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정부가 비문해자 교육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대한민국을 잘살게 하려고 못 먹고 못 입고 못 자면서 자식들을 공부시켜온 숨은 공로자들을 이제는 국가가 대접해줄 때 아니냐는 반문이다.

이 교장은 “우리나라에 중학교 이하 학력을 가진 비문해자가 한 명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우리 학교에 찾아올 사람이 없어서 학교 문을 닫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영광”이라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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