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6건 중 83.9% 정책 반영
법제도 구축·정책에 젠더 관점 통합·성평등 의식 향상 등 성과
정착 위해 정책 개선 재점검·젠더거버넌스 강화 필요

 

대전광역시 동구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거쳐 2013년부터 주로 남성 위주로 이뤄지던 민방위 교실을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생활 민방위 교실로 운영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대전광역시 동구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거쳐 2013년부터 주로 남성 위주로 이뤄지던 민방위 교실을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생활 민방위 교실로 운영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화상을 입어 성형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여성과 남성에게 지급되는 보험금 규모가 각각 다르다. 누가 더 많은 보험금을 받을까. 정답은 여성이다. 여성이 최대 3200만원까지 보험금을 받는 반면, 남성은 1000만원에 그친다. ‘여자에게 외모가 더 중요하다’는 성별 고정관념은 성형수술 보험금액 한도에도 차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여성과 남성 모두 동일하게 3200만원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 가입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된 덕분이다. 공무원 육아휴직 기간도 기존에는 남성은 1년, 여성은 3년까지 사용할 수 있었지만 성별영향분석평가가 이뤄지면서 올해부터 여성과 남성 모두 3년으로 바뀐다.

도입 10년을 맞은 성별영향분석평가가 이 같은 삶의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성별영향분석평가란, 법령·계획 등 주요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성별 특성과 사회·경제적 격차 등 요인들을 분석·평가해 정책이 성평등 실현에 기여하도록 돕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2004년 시범사업으로 9개 기관에서 10개 사업에 대해 성별영향분석평가를 처음 실시한 이후 2013년 현재 시행 기관은 304개, 과제는 2만372개로 기관과 과제 모두 크게 늘었다. 이 과정에서 총 3306건의 개선 의견이 도출됐고, 이 중 83.9%(2774건)가 정책 개선에 반영됐다. 중앙행정기관(43개)은 1569개 과제에 대해 분석평가를 통해 136건의 개선 의견을 도출했으며 이 가운데 92.6%를 수용해 개선을 추진 중이다. 지방자치단체(261개)는 1만8803개 과제에 대해 분석평가를 실시해 3170건의 개선 의견을 도출했고, 83.5%를 수용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개선 수용률은 성별영향분석평가법 시행 첫 해였던 2012년 68.1%에 비해 15.4%포인트(p) 상승했다.

성별영향분석평가는 도입 초기엔 여성만을 위한 제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남성이 불이익을 받는 정책이나 사업이 개선되면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골고루 정책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으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주요 정책 개선 사례를 살펴보면, 기획재정부가 2013년 2월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을 개정한 유방암 수술 후 재건수술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유방암 수술에 따른 재건수술에도 미용 목적인 유방 확대·축소 수술과 똑같이 부가가치세가 적용됐지만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앞으로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행정자치부도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고속국도 휴게소 공중화장실의 남성과 여성의 변기 비율을 기존의 1 대 1 이상에서 1 대 1.5 이상으로 늘렸다. 여자 화장실 앞에만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성별 맞춤형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여성 전용 군복이 만들어졌고, 시내버스 손잡이 위치도 여성의 키에 맞춰 조정됐으며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됐다. 또 성폭력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애매모호하게 규정했던 처벌 가능한 공공장소의 범위를 수유실, 탈의실, 목욕실 등으로 구체화해 성폭력범죄 처벌의 근거를 마련한 것도 성별영향분석평가로 이룬 변화들이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함과 차별이 정책 개선으로 이어지고 결국 삶의 질을 높이는 ‘나비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2012년 성별영향분석평가법이 시행되면서 정부 사업에 대해서만 이뤄지던 성별영향분석평가가 법령, 계획으로까지 확대됐고, 지난 1월 모든 지방자치단체에도 ‘성별영향분석평가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올해부터는 주요 정책에 대한 성별영향분석평가 결과가 성인지 예산 편성에 의무적으로 반영되면서 두 제도 간 연계도 강화될 전망이다. 도입 10년 만에 제도는 거의 갖춰졌다. 김둘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별영향분석평가, 집중과 지속’ 포럼에서 성별영향분석평가의 10년간의 성과로 “제도화 구축, 젠더 관점 통합, 공무원의 성평등 의식 향상”을 꼽았다. 하지만 앞으로 제도 정착을 위한 과제도 산적해 있다. 김 연구위원은 성별영향분석평가의 발전 방안으로 관련 법·제도적 규정의 충실한 이행을 위한 추진 역량 강화, 정책 개선 재점검 추적 관리 등 환류 강화, 정부·의회·시민사회가 함께하는 젠더 거버넌스 강화 등을 제시했다. 성별영향분석평가는 시민들의 정책에 대한 모니터링과 그 결과의 환류가 추진 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를 통해 제도의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질도 높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홍미영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은 계획 수립 근거인 국가 법률에 계획 성별영향분석평가 실시 조항 마련, 계획 성별영향분석평가 시기와 방식 변화, 매년 수립할 법정 계획 목록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제공 등을 성별영향분석평가 활성화 방안으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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