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대학 성범죄 피해자 5명 인터뷰
2차 피해 심각..."말하고 싶지만 남들 시선 무서워"

'서울대 교수 성추행', '국민대 카톡방' 사건...지성의 상징이던 상아탑이 얼룩지고 있습니다.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대학 성범죄는 끊일 줄 모릅니다. 알려진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여성신문은 최근 대학 곳곳에서 불거지는 성범죄 실태를 조사하고, 대학과 관계기관의 사후처리 그리고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 봅니다.[편집자주]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성추행, 언어 성폭력 등에 시달렸으나 신원 노출, 불이익 등이 두려워 침묵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성추행, 언어 성폭력 등에 시달렸으나 신원 노출, 불이익 등이 두려워 침묵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사례 #1

“잊고 살려 했는데...자꾸 떠올라요. 성희롱 당해서 자살한다는 말이 이해가 가요.” 지난 2008년 대학에 입학한 김희정(가명) 씨는 그 해 첫 학과 MT에서 성희롱·성추행을 당했다. 03학번 남자 선배들은 당시 신입생이던 08학번 여학생 둘을 XX라고 부르며 술을 따르게 했다. 술 게임을 하며 입을 맞추거나 몸을 더듬기도 했다. 이후 피해자들이 항의했지만,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호들갑이냐” “너희도 즐기지 않았냐” 고 했다. “먼저 꼬리 친 꽃뱀들이 선배 탓을 한다”는 소문도 퍼졌다. 김 씨에게는 증거가 없었다. 등 뒤로 쏟아지는 따가운 눈초리가 무서웠다. 이후 조용히 학교생활을 해 왔으나 김 씨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사례 #2 

전미라(가명·13학번)씨는 1년 전 알게 된 08학번 남자 선배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학교 및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선배는 점점 “여자는 시집 잘 가는 게 최고다. 그런데 넌 못생기고 뚱뚱해서 힘들겠다”, “섹시하지도 않고 애교도 없으면 사회생활 못 한다. 시험공부만 하지 말고 그런 공부나 해라” 등의 발언을 일삼았다. 효과적인 운동법을 알려주겠다며 전 씨의 가슴과 엉덩이 등을 만지기도 했다. “이상한 사람이니 무시해야지 하면서도 너무 힘들어요. 다시 안 볼 사이면 몰라도 계속 학교에서 마주칠 테니까 대놓고 말도 못하겠어요. 신고요? 한번 조사 시작하면 굉장히 오래간다는데... 더 힘들 것 같아요.” 

사례 #3

최세희(가명·14학번) 씨도 대학 생활 중 수차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작년 12월 과 술자리에서 남자 동기로부터 "남자랑 술 먹는 건 같이 자자는 뜻 아니냐”, “너 XX랑 자고 싶어서 같이 한잔 했지” 라는 말을 들었다. 최 씨가 기분 나빠하자 이 동기는 “술자리 농담일 뿐인데 피해의식을 갖고 그러냐. ‘꼴페미’ 같다”고 핀잔을 줬다. 최 씨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성적인 의도로 비꼬다니, 웃기잖아요? ‘아니면 말지 소심하게 따지고 드냐’ ‘여자들한테는 농담도 못 하겠다’는데... 그냥 무시해요. 이런 일이 많아서 피곤해요.”

사례 #4

강태연(가명·14학번)씨는 과 단체 카톡방을 확인하는 일이 불편하다. 몇몇 남자 동기들은 소개팅 자리에 나온 상대 여성의 사진을 카톡방에서 함께 돌려보며 여성의 외모를 평가한다. 이들은 소개팅을 ‘계집질’이라고 불렀다. 간혹 다른 여학생들에게 ‘품평’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학생들이 불쾌해하자, 한 남자 동기는 “남자들끼리는 원래 다 그러니 이해하라”고 했다. 강 씨는 황당했다. “너무 태연하게 ‘남자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니까, 제가 여자 입장에서만 생각하나, 원래 사회생활하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 하나 싶더라고요. 신고할까 많이 망설였는데, 저를 찾아내서 괴롭힐까 무서워요.” 

사례 #5

황주미(가명·09학번)씨는 지난 2013년 학교 축제날 만난 타 학과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 남학생은 “조용한 데 가서 한잔 더 하자”며 황 씨를 으슥한 잔디밭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그는 ‘네가 먼저 유혹했다. 너도 좋았잖아’라며 ‘딴소리하면 학교생활 못 할 줄 알라’고 황 씨를 타이르고 협박까지 했다. “그 후 졸업할 때까지 조용히 지냈죠. 가족들도 몰라요. 신고할까 했는데 강간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게 더 싫었어요. 저만 조용히 살면 되겠지 싶었는데 요즘은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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