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시스템 붕괴, 공동체 의식 상실 등
노후 대비 대신 자녀 사교육에 ‘올인’하기도
보육·교육·조직문화 등 패러다임 바뀌어야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 이은경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최현희 최현희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가 한 자리에 모여 저출산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사회 구조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저출산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이명숙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 이은경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최현희 최현희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가 한 자리에 모여 저출산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사회 구조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저출산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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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고달프다. 일을 하면서도 육아와 가사를 도맡는 것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나 베이비시터 등 또 다른 여성의 희생 없이는 직장에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워킹맘의 현실이기도 하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과 보육 문제는 결혼과 출산 자체를 포기하거나 기피하는 ‘결혼 파업’ ‘출산 파업’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19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는 잘나가는 여성 변호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법조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여성 진출이 활발한 분야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량과 성과 위주인 로펌의 근로 환경 속에서 여성 변호사들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이에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이제는 각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여성·인권 등 사회 공익을 위해서도 앞장서는 워킹맘 변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출산 문제와 여성 인력 활용 방안 등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워킹맘 변호사들은 한 목소리로 “그동안 개인들이 해결해왔던 보육, 교육, 일·가정 양립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사회 구조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저출산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킹맘의 삶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지나친 물질주의로 인해 인간의 존엄이 구현되기 어려운 한국 사회가 저출산 등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덕성 회복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좌담회 사회는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가 맡았다. 

참석자

·이명숙(52·법무법인 나우리 대표 변호사)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이자 조두순 사건,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울산·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건 등 여성·아동인권 관련 사건을 무료 법률 지원한 공익 변호사다. 현재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한국가족법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이은경(51·법무법인 산지 대표 변호사)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감사, 경찰청 인권보호위원 등 인권 관련 다양한 직책을 맡아 활동해 왔다. 현재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위원회 위원,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등을 지내고 있으며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임명됐다.

·최현희(45·최현희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서울서부지검 검사 출신으로 노동 전문 변호사다. 서울특별시 제2인사위원회 위원,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대한변호사협회 교육이사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감사를 맡고 있다.

저출산은 곧 국가적 위기

김효선=많은 워킹맘들이 일을 하며 육아를 도맡지만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 부족하고, 장시간 근로를 하다보니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문제가 출산 파업, 결혼 파업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변호사의 경우에도 업무량이 워낙 과중하고 야근도 많다 보니 일과 생활을 양립하기가 버거웠을 것 같다. 

이은경=일하면서 딸아이 다섯을 키우고 있다. 큰딸은 대학 졸업반이고, 막내는 초등학교 5학년으로 터울이 진다. 그렇다 보니 보육과 교육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쉽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양육 부담에 허덕이는 워킹맘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저출산 문제는 그저 아이를 적게 낳는 것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양육 부담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증가해 초저출산 사회로 접어들면 생산 가능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결국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이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내놓기보다는 단기 대책이 대부분이다. 여성들이 아이를 마음껏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금 정부가 쏟는 에너지나 정책의 10배 이상 쏟아야 한다. 

최현희=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인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가 하나였을 땐 대형 로펌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정말 버거웠다. 워낙 일이 많고 야근이 잦은 탓이었다. 결국 양육을 이유로 로펌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많은 여성 변호사들이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똑똑한 변호사였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하는 로펌도 있다고 한다. 여성들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도 버겁지만 다른 가족들의 희생 없이는 남성 중심적인 조직 분위기에서 살아남기는 참 힘들다. 

육아는 여전히 여성 몫인 한국 사회

이명숙=대학 2학년, 고3 딸 둘을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우는 데는 주변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허구한날 밤을 새우고 새벽에 나가 한밤중에 들어오곤 하는 날이 많아서, 친정 오빠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 와서 아래 위층에 살며 아이들의 부모 역할을 다 해 주었다. 전문직 여성들을 포함한 맞벌이 부부들은 모두 육아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대부분 친·인척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조인 부부일지라도 저녁 모임에는 남편들은 빠짐없이 참석하는데 아내들은 아이들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참석하더라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육아를 아직도 여성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이상, ‘대형 로펌에서 결혼 후 남성들은 능률이 높아지는데 여성들은 떨어진다’는 말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데서 나오는 것이다. 가정과 직장 모두의 역할과 능률을 본다면 여성이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가사노동과 육아 책임을 함께 하는 사회 분위기가 빨리 정착돼야 한다.

이은경=우리 세대에는 조직에 들어가기는 어려웠지만 일단 입성하면 홍일점으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후배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남성들과 똑같은 선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실제 사법고시에서 600등 한 남자가 300등 한 여자보다 로펌에 취업하기가 더욱 쉽다는 말도 있다. 이런 여성 후배들에게 결혼해서 애까지 잘 키우라고 하는 것은 형벌에 가깝다. 경영자들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성들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잘 뽑으려 하지 않고, 남자 파트너들도 여자들과 일하기 싫어하기도 한다. 남성보다 일을 월등히 잘하지 않으면 눈치도 봐야 한다. 여성 고용률을 높이려면 여성을 채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명숙=변호사는 아이를 전담해서 맡길 여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가정들이 더 많다. 얼마 전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진 송도 어린이집에 갔었다. 그곳 엄마들이 “국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렇게 내팽개치고 방임한다. 누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는 워킹맘들의 심적 고통은 더 클 것이다. 

최현희=보육을 넘어 공교육 문제도 심각하다. 큰애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신 공부는 스스로 하도록 한 내 교육관도 흔들리고 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 살다보니 아이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는데 우리 애만 안 보내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돈 있으면 학교 이름이 바뀐다’는 말도 엄마들 사이에 정석처럼 퍼져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4 청소년 종합 실태조사’를 보면 가구당 공교육비는 월평균 28만8000원, 사교육비는 평균 53만4000원을 지출했다. 교육비만으로 한 달에 82만원을 쓰는 셈이다. 공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둘째 아이는 아예 계획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차라리 과외 금지 조치가 내려졌던 시대가 그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아이 사교육비에 돈을 쏟아붓다 보니 정작 부모들은 노후 대비를 못한다는 것이다. 

이은경=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에는 ‘퍼블릭 모럴(public moral)’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붕괴가 저출산을 낳았다는 것이다. 공교육 시스템이 무너지고,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경쟁에 몰아넣고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벌이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은 ‘공정한 것은 바보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면서 도덕 개념을 잃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자녀 양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3억896만원에 달한다.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시터 비용은 월 180만원이라고 한다. 이런 문제의 원인을 깊숙이 살피고 정책 수요자의 눈으로 보고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보육·공교육 문제가 저출산 심화시켜

최현희=실제로 시험 직전 학원에서 하는 보충 강의에서 일명 족집게 자료를 나눠준다. 그런데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학원 강사에게 강의가 끝나면 자료를 걷어 가라고 말한다고 한다. 자료를 받지 못한 친구들이 빌려달라고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이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다. 경쟁에 내몰려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이러한 아이들이 명문 대학에 가서 사회지도층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겠나. 

이명숙=이러한 상황은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로스쿨은 비싼 학비와 극히 제한적인 장학제도로 경제적 약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어려움 없이 공부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중에는, 어려운 이웃이나 공익소송에 관심이 적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경향이 사법고시 출신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을 수 있다. 로스쿨에서는 변호사시험 합격과 취직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이웃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려는 균형잡힌 인권의식을 어떻게 고취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개인 문제 넘어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최현희=지금 이러한 문제를 국가가 아닌 개개인들이 버겁게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시스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복잡한 대입 제도와 그로 인한 불확실성에 있다고 본다. 현재와 같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대입제도에서 도대체 어떤 전형으로 대학을 보내야 하는지 몹시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그러한 불안감이 결국은 효과도 확인되지 않는 사교육시장으로 부모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합, 불합의 이유도 제대로 납득할 수 없는 지금의 입시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또한 교육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다보니 이제 국민들은 정부를 믿지 않게 됐다. 예를 들어 영어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하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얼마 있지 않아 입시제도가 또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고 또 국제화 시대에 뒤떨어지게 어떻게 영어 공부를 시키지 않을 수 있느냐는 입장을 이어서 앞으로도 영어 사교육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일관되고 지속된 교육정책과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간명한 입시제도가 정말 필요하다. 

김효선=지금 한국 사회는 교육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성평등을 최우선 국정 철학으로 삼은 스웨덴에 갔을 때 인상 깊은 유치원 원장의 말이 떠오른다. 유치원의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는 한 아이도 소외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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