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아라리요~ 정선아리랑열차 안엔 웃음꽃 가득
정선5일장·스카이워크 구경하고 토크 콘서트로 스트레스 싹!
“딸하고 처음 떠나는 정선 기차 여행이에요. 어젯밤 설레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저희는 30여 년 된 친구 사이예요. 오늘은 친구와 함께 신나게 놀고 싶어요.”
입춘이 지난 지 한참이지만,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계속된 2월 27일 금요일 아침, 청량리역 3층 대합실에는 분홍색 옷으로 ‘깔맞춤(색깔맞춤)’한 듯한 100여 명의 여성이 모이기 시작했다. 30대부터 7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여행을 앞두고 밝은 표정이었다. 이윽고 한 여성이 등장하자 박수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방송인 박경림(36)씨였다. 일곱 살 난 아들 민준군을 둔 박경림씨는 주변에 모여든 엄마들과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여행은 박경림씨가 최근 『엄마의 꿈』이란 제목의 책을 내면서 인연을 맺은 SM C&C BT&I 송경애 대표를 만나면서 성사됐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일도, 가정도,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한 두 사람은 엄마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의기투합했다. 그 결과, 여행사를 운영하는 송 대표의 도움으로 ‘엄마의 꿈 열차’가 탄생했다. 100명의 여행단은 온라인 서점 예스24, 송경애 대표 블로그, 박경림이 진행하는 MBC FM ‘2시의 데이트’ 등을 통해 선발됐다. 이번 여행은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타고 강원도 정선으로 가서 정선 5일장과 스카이워크를 보고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정선아리랑 극을 관람한 뒤 토크 콘서트를 갖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날 이들이 탄 열차는 정선아리랑 열차. 국내 여객열차 가운데 처음으로 지역 명칭을 사용하고, 열차에 정선의 삶과 자연, 춤사위와 소리를 고스란히 실었다. 청량리-정선-아우라지 구간을 매일 1회 왕복 운행한다. 엄마들은 기차 여행의 별미, 삶은 달걀을 먹으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미원역에서 민둥산역 구간에서는 시속 30㎞로 서행 운전해 주변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모녀가 함께 온 커플이 많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엄마와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이라는 유순자(69·충남 예산), 오국희(39·서울) 모녀는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수다꽃을 피웠다. “저는 위로 오빠만 셋이고, 막내딸로 자랐어요. 어릴 때에는 워킹맘으로 늘 바쁘신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엄마는 딸이고, 그 딸은 다시 엄마가 된다’는 말처럼 오씨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놓치 않았다.
100명의 엄마, 박경림과 떠난 기차여행
엄마들과 함께 기차를 탄 박경림씨는 “오늘 엄마를 모셔올 걸 그랬다”며 아쉬움을 비쳤고, 송경애 대표 역시 “남편과 아이들과는 여행을 다녔지만 미국에 계신 부모님과는 여행을 갈 기회가 적었다”고 털어놨다.
정선역에 내린 후 곧바로 ‘정선 5일장’에 들렀다.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나는 청정 산나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박경림과 송경애 대표, 엄마들 역시 시골의 넉넉한 인심과 정에 흠뻑 빠졌다. 버스에 오르는 엄마들의 손에는 강원도의 특산물인 메밀을 이용한 전병을 비롯해 곤드레나물 등이 봉지째 들려 있었다.
정선 5일장에 이어 엄마들의 발길은 병방산(해발 681m) 스카이 워크로 향했다. 스카이워크는 병방산 정상 200m 허공에 바닥을 강화유리로 만든 전망대다. 엄마들은 동강과 한반도 모양과 닮은 자연경관에 푹 빠졌다. 곳곳에서 여행 필수품이 된 셀카봉을 꺼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들은 정선 전통 시장을 구경한 뒤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 ‘메나리’를 감상했다. 민족의 한과 상처를 달래는 과정을 정선아라리 가락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평소 문화생활을 마땅히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엄마들은 공연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이날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엄마들만을 위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특별히 엄마 아나운서를 맡은 추연래씨가 무대에 섰다. 오랫동안 농협에서 일하다 웃음치료사로 새 인생을 시작한 추씨는 “엄마인 제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시원한 웃음으로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이날 엄마들은 자신의 옛 사진과 현재 사진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멜빵바지는 물론 허리를 잘록하게 해주는 하이웨스트 치마를 입었던 멋쟁이 아가씨는 손주를 안고 있는 할머니가 됐고, 부잣집 자제가 아니면 좀처럼 찍기 어려웠던 옛날식 증명사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여학생은 가족사진 외 독사진은 안 찍는 엄마가 된 모습에 다들 공감했다.
레일 위 낭만이 달린다
또 엄마들은 ‘엄마가, 엄마여서 제일 힘들 때’ ‘엄마여서 행복한 때’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힘들게 임신해 낳은 아이가 ‘엄마’라고 불러줬을 때 행복했다는 엄마, 일하는 아주머니가 그만두는 바람에 아이를 학교에 몰래 데리고 와 숨기면서 일주일간 출근해야 했던 교사 엄마까지… 사연도 다양했다.
마지막으로 박경림씨와 송경애 대표의 조언에 꿈과 희망을 찾기도 했다. 이날 송 대표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말고, 당장 죽느냐 사느냐 고민이 아닌 이상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살자”고 말했고, 박경림씨는 “경력 단절이 아니라, 경력 추가라고 생각한다”며 엄마들을 응원했다.
집에 가는 열차에 오른 장영숙(45·경기도 구리)씨는 “정선이라는 곳에 처음 가봤는데 낯설지 않았다.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났다”며 “나이를 떠나 같은 엄마들끼리 모여 서로 공감가는 이야기를 나눠서 박경림씨 역시 연예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동네 엄마들과 수다를 떠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하루였다”고 말했다.
밤 9시 30분, 청량리역에 도착하는 것을 끝으로 엄마를 위한 여행은 이렇게 막이 내렸다. 엄마나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돌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행복은 그리 크거나 어렵게 찾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