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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수출업체인 진우실업(본사 송파구 잠실동)은 마구용품 제조업체로 더 유명하다. 지금까지 고급 마구용품 6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으며 올해 안에 약 1백만달러, 내년에는 약 2백만 달러를 달성할 예정이다. 1992년에 설립된 진우실업은 국내 대표적인 마구용품 제조업체인 마스타공업을 지난 95년에 인수하여 ‘제니 비앙카’라는 자체 브랜드로 박차, 재갈, 바판, 버클, 안장 액세서리 등 10여가지 품목 1천여 모델을 완전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미국 및 유럽시장에 중국이나 동남아제품에 비해 20-100% 정도의 높은 가격에 수출하고 있으며 고급제품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93년 국내 전문 마구용품업체가 외국업체로부터 빈번하게 클

레임을 받음에 따라 국제적인 신용도가 크게 떨어졌고 후발주자의

거센 도전을 받아 국내업체가 전멸한 상태에서 저희 회사가 다시 수

출을 재개하자 업계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지요.”

김영자(41) 사장은 도산위기에 처한 기업을 인수해 7억원 이상을 들

여 생산설비를 교체하고,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박차

와 재갈 등의 디자인에 과감히 투자했다. 황동, 알루미늄, 스테인레

스 등 마구의 소재도 다양화했다. 디자인과 품질을 차별화함으로써

‘사장된 아이템’을 재발전시키는데 문을 터놓았다. 앞으로는 승마

복, 채찍 등 생산품목을 늘릴 예정이다.

본인이 승마를 워낙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김영자 사장의 승마와

승마용품에 대한 지식은 탁월하다. 용인대 승마학과 교수들은 그에

게 자문을 얻을 정도다. 승마인들이 모이는 리셉션장에서 그가 풀어

놓는 지식에 모두 깜짝 놀란다. 그만큼 마구용품제조업은 남성 고유

영역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진우실업 직원은 전체 17명. 그 중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문양을 조

각하고 있는 여직원이 4명. 금형실에서 금형제도를 하는 하는 직원

을 포함해 여직원은 모두 6명이다. 그 중 한 아주머니는 문양조각에

있어 거의 국보급 수준이라며 김영자 사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진우실업에서는 여직원이라고 커피를 타지 않는다. 나이가 제일 어

린 사람이 주로 커피 심부름을 한다. 모두 바쁘면 김영자 사장이 직

접 끓이기도 한다. 사실 그는 일에 있어서 남녀구분은 따로 하지 않

는다. 그라인딩(표면처리)이나 조각 분야에 전 직원을 로테이션으로

업무를 익히게 한다. 야근에도 여직원은 예외가 없다.

“사회생활하면서 여성이 무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자라

고 편하게 일하면 안돼죠. 기혼여성의 산후휴가는 반드시 있어야 되

는 것이지만 저희 회사에 생리휴가는 없어요.”

김영자 사장은 기혼여성이 일을 갖고 있는 것을 더 선호하고 권장한

다. 한번은 만삭인 여직원이 “출산하면 그만 두어야 하지 않느냐”

는 질문에 김사장은 “무슨 소리냐, 그런 정신이면 지금 당장 그만

둬라. 할머니가 돼서도 열심히 일을 할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타

일렀다.

김영자씨가 처음으로 기업체 대표를 맡은 것은 29살 때였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국제경영학 박사과정을 막 시작하려던 무렵이었다.

혼다 모터스로 광고납품을 하고 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주)조인트라는 일본회사의 한국법인체 지사장을 맡아 달라는 의

뢰를 받아 들이면서 사업가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당시 김영자

씨는 일본 다이와 증권회사가 한국진출을 앞두고 입사 권유를 받기

도 했었다.

그가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것은 학생운동에 가담한 때문이었다. 연

세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 학생시위에 참여했다가 전투경찰에게 잡히

는 장면이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고 김사장의 부친이 여권을 내밀었

던 것이다.

(주)조인트 본사 부도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그는 당시 직원들과

함께 우진실업을 설립해 ‘돈벼락을 맞을 정도’로 사업이 잘 되었

다. 서울 올림픽 당시 국내 경기가 3고 현상으로 호황기를 맞을 때

였다. 80년대 말부터 90년 초까지 구로동에서 직원 6백명을 둔 우진

실업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잘 나가던 사업체가 생산기지를 인도네시아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

생한 오류로 도산위기에 처해 있는데다 임신중이었던 김영자씨는 사

업을 잠시 쉬었다. 그러던 중 첫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 그는 진우실

업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제조업이 워낙 힘들어도 제조업자

는 그 미련을 못 버리기 때문”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탓인지 김영자 사장은 경기흐름에 대한 나름대로

의 논리가 확실하다. 국내 언론이 모두 경기불안을 걱정하고 있지만

그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경제는 활황과 불황이 3년 주기로 변합니다. 저는 우리 경제에 대

해 매우 낙관적으로 봅니다. 현재 수출이 개선국면에 있고 각 기업

이 경영구조조정을 하고 있어 부실기업이 정리되면 탄탄한 경제환경

을 맞게 될 것입니다. 8개월만 움추리고 있으면 내년에는 GNP 1만2

천불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봅니다.”

“경제가 불황일 때에는 오히려 기업이 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김영자 사장은 덧붙인다. “불황일 때에는 은행돈을 쓰기도 쉽고 원

자재 가겨도 싸게 구매할 수 있으며 인력수급도 원할하기 때문에 기

업확장은 불황일 때 하라”고 충고한다.

김영자 사장의 올해 목표는 진우실업의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섬

유산업에 전력투구하여 국내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이미 마구용품

제조업은 독립채산제로 분리시켰다. 그 자리에는 관리과장을 사장으

로 앉혔다.

섬유수출업이 사실 경쟁력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김영

자 사장은 현행 8%인 관세를 20%까지 끌어 올린다면 우리나라 봉

제산업 경쟁력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또한 내년 5

월에는 비앙카컵 승마대회를 개최하여 승마인구의 저변 확대와 함께

마구용품의 국내 수요를 확대할 계획도 함께 밝혔다.

3년 전까지만해도 중소기업육성지원자금을 받으러 가면 남편의 재산

증빙서류를 요구받았고, 대출시 회사가 김사장의 명의로 되어 있어

도 남편의 직업이나 동의서를 가져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김영자

사장.

“적어도 10년을 내다볼 수 있는 전략적인 미래비전을 세울 수 있어

야 합니다.요즘 신세대들을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여성기업인들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

었다.

<박정 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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