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들어 가장 ‘뜨는’ 두 가지는 아마도 인터넷과 주식일 것이
다. 인터넷과 주식의 공통점. 잘만 이용하면 대박으로 돈을 벌 수 있
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잘 모르
지만 왠지 아는 척해야 될 것 같은’ 점이 이 둘의 가장 큰 유사성이
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이 아무리 우리의 삶을 바꿔 놓고 있다고 해도, 컴맹에다 넷맹
인 사람들에게 정보선진국으로의 진입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모르는
걸 계속 접해야 하는 고통에서 애써 벗어나고 싶지만 매일 보는 TV,
특히 광고는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강요한다. 상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아야 하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광고는 컴맹이든
넷맹이든 가리지 않고 파고드는 것이다. 이들 광고는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을 못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질 뿐 아니라, 우리 나라가 세계
10대 정보강국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고 설교한다. 특히 이
런 컴퓨터, 초고속 통신, 인터넷 관련 상품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상
이 바로바로 적용되는 것이기에, 처음에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식격
차의 논리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식과 정보의 전유는 남
성들에만 허용되는 것일까.
인터넷은 실제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사이버 상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인터넷 관련 광고에서 보여지는 여성은 쇼
핑과 애정관계에 국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남성 중심적 사회가 광고에서 여성의 영역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이 사
이버 관련 광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핸드폰의
인터넷 기능은 회사 업무를 스키장에서도 볼 수 있어서 일과 가정에
모두 충실한 자상한 아빠가 되게 할 수 있는 반면(삼성 애니콜), 여성
에게는 ‘인터넷 덕분에 쇼핑의 기쁨을 더 커지게 하는 것(두루넷)’
이다. 또한 남성에게는 입사시험 면접 전에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기능을 하지만, 여성에게는 선글라스가
얼마인지를 검색하는 소비적인 용도로 쓰일 뿐이다(SK텔레콤). ‘기업
의 인터넷’은 남성에게 달려 있지만(온세통신 신비로), 인터넷 백화점
에서 물건을 사고 즐길 수 있는 건 여성이기 때문이다(한국통신 바이
엔조이). 이 광고들의 근저에 남자는 벌고 여자는 쓰기나 한다는 편견
이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애정관계에 있어서는 더 적
극적으로, 남자의 질투심을 유발하면서 역으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
는 도구가 된다(n016 ‘잘 자, 내 꿈꿔’). 남자를 가지고 노는 여자,
이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그나마 용납될 수 있는 건 N세대의 사
랑 문제에 한해서이다.
한편 이 광고들에 깔리는 보이스오버는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에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발화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보이스오버는
초월적이며 권위 있는 하나의 권력이 되는데, 비가시적인 남성의 목소
리 권력이 위력을 떨치는 광고는 다름 아닌 라이코스 광고이다. 이 광
고에서 보이지 않는 남성의 목소리는 충견에게 검색할 것을 명령하고,
이 개는 목욕하는 여자를 주인 앞에 대령한다. 이때 데려온 여자 가수
가 욕조 안에서 알몸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설정은 공적인 무대가
아니라 사적 공간이라서 더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낮은 톤의 목소리로
“잘했어, 라이코스”라 말하는 남성의 목소리는 언제든 여자를 소유
할 수 있는 전지적인 남성의 표상이 되며, 여성은 남성의 이러한 능력
앞에 권력이 배제된 객체로서 전락하는 것이다.
흔히 21세기를 일컬어 정보화 시대이며, 여성의 세기라고들 한다. 하
지만 사이버 세계와 여성의 행복한 만남은 현실세계에서의 변화 없이
는 멀기만 한 일이라는 것을 이 광고들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