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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인데 학교가 인격적으로 대해 주지 않았

거든요. 그런 학교는 당연히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꿈을 실현시

킬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학교를 가지 않아도 꿈을 실

현시킬 방법이 있어요. 찾지 못했을 뿐이지, 다른 방법을 찾는다면 학

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든요.”

3월 20일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의 작은 세미나실,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거침없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인터넷 피에스타2000 코리아’ 행사의 오프라인 이벤트로 열린

‘한·일 부등교(不登校) 청소년들의 만남’. 일본의 대안학교인 도코

슈레 학생들을 초청해 마련한 20일의 토론회에선 한국의 하자센터

(www.haja.or.kr)와 격월간‘민들레’의 탈학교모임(user.chollian.net

/∼mindle98), 사이버유스(www.cyberyouth.org), 간디고등학교

(user.chollian.net/∼gandhis)가 참가했다. 그러나 토론회는 처음부터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각 단체 소개를 하고 시작하자는 사회자의 말에 탈학교모임의 한울이

가 이의를 제기한다. “처음에 공식행사처럼 붙이는 건 딱 질색이거든

요. 얼굴 한 번 보고 이름 한 번 더 듣는다고 서로 알게 되는 건 아니

라고 생각해요.”

여느 토론장 같았으면 당장 무시당할 말이었지만 모인 아이들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도 자체가 새로운 길을

찾는 아이들의 노력”, “사회자가 참석자에게 진행방식을 묻고 함께

토론방식을 찾아나가는 토론회는 처음이다” 등등. 그리고 나서야 인

터넷으로 함께 하는 친구들을 위해 짧게 소개를 하고 토론을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먼저 도쿄슈레의 소개. 15년 전, ‘등교 거부를 생각하는 모임’의 부

모들과 시민의 협력으로 문을 연 도쿄슈레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

인가를 모두 아이들이 정한다. 활동가(스탭)들은 아이들을 도울 뿐, 지

도하거나 야단치지 않는다. 아이가 ‘들어오고 싶어하는가’가 유일한

입학조건이며 점수 경쟁도, 교칙도, 체벌도 없다. 이어서 한국 참가자

들의 소개도 끝난 후, 바로 쟁점이 된 화제는 초등학교 자퇴문제다.

“어리기 때문에 자기결정을 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른들이

‘너희들은 십대니까 자기결정을 못해’하는 것과 같습니다.”“자퇴

하는 문제와 자퇴한 후에 자기 길을 찾아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예요. 자퇴한 후에 여러 가지가 마련돼 있다고 해서 자퇴하는 게 아

닌 거죠.”

게이찌 다나카는 일본의 소학교 자퇴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전하

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5학년 때 자퇴했는데, 학교가는

게 너무 당연해서 학교 안가는 건 나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는

가기 싫지만 학교를 안 가면 어떻게 할까 하는 정보가 전혀 없어서 너

무 괴롭고 죄의식도 생기고 해서 집에 2년 반 동안 틀어박혀 있었

다.”

아이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학교와 선택권이 없는 교육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학교를 나오고 나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사이버유스의 ‘표’(별칭)군은 하자센터나 대

안학교의 아이들은 축복 받은 경우라고 말한다. 사이버 상에는 자퇴하

고 싶어도 그 이후의 현실이 두려워 괴로워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 어디에도 소속된 곳이 없다는 장희는 “틀에 박힌 학습이 싫어서

학교를 나왔는데요, 운이 나빠서 병원에 다니게 됐어요. 근데 병원 다

니면서 깨달은 것은 자기 스스로가 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가장 중

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을 그만두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데요, 그래서 대학 안가고 독학으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라고 어렵게 말해 자퇴생에 대한 어른들의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대안학교에 가도 무작정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

에 적응 못하는 아이들도 많고 부모들은 대안학교를 ‘다시 학교로 돌

아가기 위해 쉬어가는 곳’쯤으로 생각한다.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하자센터를 제외하고는 학교 운영비가 고스란히

부모의 몫으로 돌아가기 마련.

무엇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어

른들의 교육제도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다는 생각은 안하고 탈선 같은

나쁜 쪽으로 생각하시는 어른들이 많거든요. 이러시지 않았으면 좋겠

어요.”“학력사회의 기준을 아예 무시하기가 참 힘들다는 거죠. 생계,

군대... 정말 자기가 소질이 있는가, 자기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 있

던 믿음도 흔들릴 수 있잖아요.”

토론회는 할 말 많은 아이들의 생각을 반도 담아내지 못한 채 예정

보다 늦게 끝났고 모든 과정은 인터넷으로 동시 중계됐다.

'이신 지영 기자 skyopen@womennews.co.kr'

인터넷 피에스타 2000이란

‘인터넷 피에스타(Internet Fiesta)’(www.internet-fiesta.org)는 작년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는 유럽연합이 주축

이 된 세계적인 인터넷 축제로 확대되기에 이르렀고, 지난해에 이어

벨기에, 불가리아, 캐나다, 프랑스, 독일,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네

덜란드, 아프리카 등 각국이 다양한 아이디어로 ‘인터넷 피에스타

2000’에 참가했다. 이 축제의 가장 큰 강점은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는 것. 개인이 생각해 낸 이벤트를 인터넷에 올리면 전세계의 네티즌

들이 화면을 클릭해서 함께 읽고 볼 수 있다.

3월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인터넷 피에스타 2000에 아시아 최초로

참가하는 한국의 진행팀은 인터넷에서의 놀이가 혼자만이 아님을 보이

는 데 초점을 맞춘다. PC방의 네티즌을 사회 부적응자로 보고, 리얼

스페이스와 사이버 스페이스의 경계를 굳이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인터

넷 피에스타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하자센터에서 열린 오프라인 행사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길놀이와

비나리를 시작으로, 십만원 영화제와 락밴드 공연, 댄스파티 등 여러

이벤트로 진행됐으며, 이 모든 행사가 인터넷으로 중계됐고 온라인

(www.internet-fiesta.or.kr)에서는 라디오방송 ‘귀막지마(鬼幕之魔)’

와 함께 각종 영상물과 이미지, 음악들이 올라와 네티즌들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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