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일본시민들이 교토시 마루야마 공원 음약당 앞에 모여 있다. 이들은 “아베정치 용서 안해”라고 적힌 포스터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뉴시스·여성신문
18일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일본시민들이 교토시 마루야마 공원 음약당 앞에 모여 있다. 이들은 “아베정치 용서 안해”라고 적힌 포스터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뉴시스·여성신문

국내 한 신문의 도쿄 특파원은 집단자위권을 포함한 안보 관련 제‧개정 법안 11가지가 중의원에서 통과되던 지난 16일 “아베 신조 총리는 ‘종교적 신념에 가득 찬 전도사’처럼 표결 과정을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정말 아베 총리는 확신범인 듯하다. 2013년 5월 아베가 미야기현에 있는 항공자위대 기지를 방문해 ‘731’이라는 편명이 적힌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 경악했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731이 무슨 숫자인가. 중국인, 한국인을 산 채로 얼리고 자르고 찌른 극악한 생체 실험을 한 관동군 소속 부대 이름 아닌가. 그것이 자랑스럽단 말인가.

1993년 과거사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담은 고노담화 발표 때 그럴 필요 없다고 반대한 젊은 국회의원이 아베였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될 때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발언한 사람도 아베였다.

그는 젊은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어 과거사를 미화한 역사교과서 출간을 지원했고, 3만 명의 정치인‧학자‧시민 모임인 일본 최대의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국회의원 간담회 부회장, 독도 문제 등을 다루는 자민당 영토방위위원회 책임자였으며, 그밖의 여러 개의 소그룹을 이끌었다. 2006∼2007년 90대 총리, 2012년부터 지금까지 96∼97대 총리를 또다시 맡아 극단적인 우경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번 안보 관련 법안 통과는 그의 지속적인 확신에 찬, 자랑스러운 일본 만들기 행보의 맥락에 서 있는 것이며, 앞으로 더욱 박차를 가해 평화헌법 개정까지도 달려갈 것으로 보인다. 안보 관련 법안이란 일본 정부가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전쟁 포기 조항)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완전 비무장 선언)는 내용의 일본 평화헌법(1947년 제정) 제9조의 해석을 변경하고 바뀐 해석을 근거로 만든 것으로 일본이 언제든 전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소위 ‘보통국가론’이라 하여 일본이 독립국가로서 정당한 방위를 위해 군대를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확산시키며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해 왔으나 시민들의 반대 때문에 진척을 보지 못했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된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시민들은 계속 보수화돼 왔지만 전쟁의 혹독함을 기억해 평화헌법 개정만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화헌법 제9조를 지키는 시민모임’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주자’ ‘입헌포럼’ 등 시민단체들이 활동해 많은 시민들이 가세해 왔다.

이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 확신에 찬 발걸음을 내디딘 사람이 아베 총리다. 16일 중의원 통과 후 곧바로(17∼18일) 시행된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68%의 시민이 안보 관련 법안 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으며, 18일 일본 전역 100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아베 정치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피켓 시위가 일어났다. 그래도 아베는 곧바로 참의원에서도 강행처리할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사실상 그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일본이 주권국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도록 했으며 한국전쟁 발발 시 일본의 재군비를 촉구해 1954년, 완전 비무장을 선언한 평화헌법 9조와 배치되는 자위대법이 통과되도록 했다. 1960년 미일상호방위조약의 체결과 1991년 PKO협력법 성립으로 자위대는 실질적인 군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 안보 관련법 제·개정도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 군비를 절감하려는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그러나 그 구조적 배경을 현실적 조건으로 끌어낸 아베의 DNA를 무시할 수 없다. 그는 A급 전범 용의자로 석방 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며, 관방장관과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다. 또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19세기의 군국주의자 요시다 쇼인이라고 하니, 그의 정치적 성향은 변하기 힘들 듯하다.

이 구조적 조건과 아베의 정치가 계속되는 동안 한국과 아시아의 안위는 물론 일본의 미래가 정말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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