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앙드레 고르는 오늘날

노동의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요령 있게 설명하는 학자이다. 우선 그

는 노동에 기반했던 산업사회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요약한다.

▲각 개인이 더 많이 노동할수록,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누린다.

▲거의 혹은 전혀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전체로서의 공동체의 이해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이며, 공동체의 성원이 될 자격이 없다.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은 사회적 성공을 성취하며,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

직 그 스스로 책임이 있을 뿐이다.

간단한 요점이지만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고르는 곧 이 가치

관에 대해 지적한다. “보다 많은 생산이 보다 많은 노동을 의미한다

는 것, 보다 많은 생산이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

은 이제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이어 강조한다.

그 동안 있어 왔던 모든 노동윤리는 이제 진부한 것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조금씩 덜 일하기도 끝나가고 있다. 노동의 만

족감이나 기쁨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노동을 통한 유토

피아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실현하고 있는 ‘자동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혁명은 디지털 혁명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이것만으

로도 정보화산업은 지금 노동양식의 와해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을 갈

팡질팡하게 만들고 있다.

독일 노총(DGB) 경제사회연구소의 볼프강 레히어(Wolfgang Lecher)

의 최근 연구는 앞으로 10년 내 다음과 같은 노동자 현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25%는 임금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으며 대기업의

지속적 일자리를 유지하는 숙련 노동자가 될 것이다. ▲25%는 불안

정·미숙련·저임금 일자리를 갖는 주변적 노동자가 될 것이며 이들의

노동시간은 시장변동에 따를 것이다. ▲50%는 반고용·실업·주변화

상태의 노동자로써 임시·계절 노동과 뜨내기 일자리(odd job)를 담당

하게 될 것이다.

대안 없이 이렇게 전망만 한다는 것이 무모하거나 또는 무책임하다는

비평을 받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추세를 바르게 말하는 사람들은 있

어야 한다.

이 시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말하려는 기색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산업사회의 노

동체제를 굳건하게 그대로 유지해 갈 만한 확신과 능력이 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렇게 버티고 살아만 갈 수 있다면 이런저런 말을 안하

고 지낼 뿐 아니라 아예 도외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렇게 버티고 경쟁할 수 있는가. 이것을 다급하

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연간 2천6백 시간까지도 일하고 있다.

유럽은 1997년에 이미 1천5백 시간대로 줄어들었다. 일본도 1천8백 시

간대이다. 그러나 세계의 전망은 앞으로 10년 내 연간 1천 시간을 향

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일하지 않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많아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시간을 사는 방법을 새로 학습하게 되었다고 하

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의 자율적 활동은 무엇일까.

어떤 필요와 목적이 없어도 결국은 자기성취, 자기 풍부화, 자기 교육,

자기 창조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를 위한 예술·철학·

과학의 학습이나 자선·상호 부조활동이 새로운 노동이 되는 것이 아

닐까. 그러나 문제는 이 노동의 대가가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한국문화복지협의회장, 문화비젼2000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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