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숙/ 여성환경연대, 에코페미니즘 세미나팀 꿈지모

(꿈을 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회원

갈수록 더 삭막해지고 사나워지는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나무들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산 숲에서 고단하고 상처받은 심신을 위로 받는다. 일상에 지치고 누군가에 상처받고 괜시리 화가 나고 마음속에 아무런 의욕이 일지 않을 때, 난 때때로 내가 다녔던 대학교의 작은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 속에 들어가면 그 누구나 맑은 공기, 새 소리, 나무와 풀꽃의 진한 내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무와 풀꽃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캔에 담아 상품화시키고 있는 그런 부분화된 요소만이 아니다. 나무들은 언제나 그렇지만, 심지어 헐벗고 있는 겨울에도 그렇지만, 언제나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에너지, 살아서 느끼고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모든 에너지들을 느끼게 한다. 숲 안에 가만히 들어가 앉아있으면, 곧 잎을 피우고 바람에 흔들리고 햇살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 눈물겹게 분투하고 있는 그들의 힘이 느껴진다. 나무는 사람들이 알아채든 못 알아채든,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묵묵하고 한결같이 분투하면서 사람들에게 생명의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고마운 나무들은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험하고 폭력적인 취급을 당하며 살고 있다. 나무들의 터전인 숲들을 뭉텅뭉텅 송두리째 파헤치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폭력에서부터 나무에다 몸을 문지르고 못을 박고 껍질을 벗겨내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일상적인 학대까지, 나무들은 엄청난 폭력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이 당면하고 있는 고통은 산 속이든, 도시 차도 속이든, 빌딩 옆 정원이든 한정되어 있지 않다. 언제부턴가 밤이 되면 대형 빌딩 옆이나, 예식장, 레스토랑 옆의 나무들은 수백 개의 작은 전구들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밤새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몸을 빌려줘야 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 이제 나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역할에서 색다른 정취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광고판 역할을 하면서 밤 시간까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의 몸에 밤새 깜빡이는 수백 개의 전구를 달았다고 생각해 보자. 산 사람을 어떤 목적을 위해 밤새 전기고문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는가. 나무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생명이다. 나무들도 느끼고 아파하고 생각하고 심지어 노래한다는 사실이 최근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나무를 주인이 잘라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나무는 그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한다. 열매가 시원찮아 나무를 없애야지 하는 말을 들으면 대추나무는 그 이듬해에 열매를 가득 달아서 분투하고 있는 자기 존재를 알린다고 한다. 그뿐인가. 대기오염이 심해져서 자기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소나무들은 솔방울을 잔뜩 매달아 자기 자손들이 멀리 퍼져 살도록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또 자작나무는 외로움을 잘 타서 저 혼자 심어놓으면 말라죽어 버리고, 모든 식물들은 바하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걸 들으면 더 튼튼하게 성장한다고 한다. 그렇게 나무들은 사람처럼 주위 환경에 민감하고,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수액채취용 파이프에 깊이 찔려 신음하는 나무들을 보라. 옛 일제시대부터 송진채취를 위해 뱃가죽 살점을 뜯어 먹힌 소나무들을 보라. 머리 위에 새둥지 대신 무수한 전구알을 이고 있는 저 불쌍한 가로수들을 보라.

이제 나무들을 그만 괴롭히자. 많은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그들에게 이제 평화를 주자.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평화로움과 생명의 힘 속에 건강히 살 수 있게 하는 진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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