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노인 취업률 37%인데 

여성 노인은 22.3% 불과

남성 노인 근로소득 월 100만원, 

여성 노인은 월 33.8만원

 

간병, 주방 보조, 베이비시터

임금 수준 낮은 일자리 주류

민간 고용 활성화해야

적합 직무 개발, 교육훈련도 ‘절실’

 

10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2가에 있는 ‘꽃할매네 주먹밥 & 찬’ 가게에서 60∼70대 여성 직원들이 직접 만든 주먹밥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꽃할매네’는 서울 영등포구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요식업 브랜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0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2가에 있는 ‘꽃할매네 주먹밥 & 찬’ 가게에서 60∼70대 여성 직원들이 직접 만든 주먹밥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꽃할매네’는 서울 영등포구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요식업 브랜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올해 일흔 살인 조광옥씨는 매일 아침 6시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2가 ‘꽃할매네 주먹밥 & 찬’ 가게 문을 열 때마다 활력이 솟는다. 새벽 어스름을 뚫고 가게 문을 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씨는 “이 나이에 이런 직장이 생기리라곤 꿈도 못 꿨다. 요가 배우러 다닐 때보다 더 신나서 출근한다”며 웃었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꽃할매네 주먹밥 & 찬’ 가게에선 60∼70대 여성 4명이 손님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를 쓴 직원 두 명은 주먹밥을 뭉치랴 플라스틱 용기에 담으랴 눈코 뜰 새 없었고, 한 명은 연신 울려대는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뺐다.

‘꽃할매네’집에 웃음꽃 피었다

‘꽃할매네’는 서울 영등포구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요식업 브랜드다. 현재 60∼70대 여성 17명이 주당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월급은 30만원. 영등포구는 기부채납 받은 오피스텔에 4000만원을 들여 지난 6월 25일 ‘꽃할매네’를 열었다. 주변에 중·고교, 아파트, 회사, 오피스텔이 자리해 간편식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보건복지부 ‘시장형 일자리 사업’이라 총사업비는 정부와 시, 구가 공동 분담한다. 조길형 구청장은 “할머니들의 깊은 손맛을 담아 건강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를 선보인 덕에 단골손님이 많다”고 자랑했다.

직원들은 개업 전부터 전문 강사를 초빙해 위탁 업체인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에서 친절·서비스 교육을 받고, 요리사와 두 달간 실습 훈련도 했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적잖았다. “밥이 꽉꽉 뭉쳐져 젓가락도 안 들어간다” “주먹밥이 짜다” “김가루를 너무 뿌려 밥이 까맣다” 등 고객 항의가 잇따랐지만 표준화된 레시피를 만들면서 경쟁력이 높아졌다. 햅쌀밥에 국산 재료를 쓰고 화학조미료도 안 쓰다보니 건강식으로 입소문이 났다.

조광옥씨는 결혼 전 중학교 과학교사로 일하다 전업주부가 된 지 45년 만에 일터에 나왔다. 100세 시대라는데 건설회사를 폐업한 남편의 연금만으로는 생활비도 부족해서다. “전 국민연금에도 가입하지 않았어요. 노후 자금을 30%밖에 마련하지 못해 늘 불안했죠. 요즘은 매달 5일 따박따박 돈이 나오니 불안이 다소 줄었어요.” 조씨는 “‘꽃할매네’가 10∼20년 이어갔으면 좋겠다”며 환히 웃었다.

60대 초반까지 40년간 과일·채소 가게를 운영했다는 김은혜(66)씨는 “매일 일하니까 몸이 건강해지더라”고 했다. 김씨는 “친구들이 ‘꽃할매네’에 자리가 나면 꼭 연락해달라고 한다”며 “파출부, 아파트 청소일 등 60대 여성 일자리는 많다. 하지만 몸이 고돼 오래 하기 쉽지 않다. 여긴 하루 2시간씩 일하니까 부담이 안 된다. ‘꽃할매네’에서 70대 후반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영등포구는 이미 신길동에 들어설 2호점 공사를 마무리했다. 11월 말부터 ‘꽃할매네 주먹밥 & 국수’ 가게 시범 운영을 한 후 내년에 본격적으로 가게 문을 연다.

‘꽃할매네’에서 일하는 60∼70대 여성들은 평생을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온 ‘살림박사’다. 이들은 살림 솜씨를 살려 인생 이모작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성 노인 일자리는 태부족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일자리사업을 희망하는 남녀 노인은 119만 명이지만 일자리 수는 33만7000여 개(27.7%)에 불과하다.

 

‘꽃할매네 주먹밥 & 찬’에서 일하는 60∼70대 여성들은 평생을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온 ‘살림박사’다. 이들은 살림 솜씨를 살려 인생 이모작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꽃할매네 주먹밥 & 찬’에서 일하는 60∼70대 여성들은 평생을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온 ‘살림박사’다. 이들은 살림 솜씨를 살려 인생 이모작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인들은 왜 일하고 싶어할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65세 이상 1만452명의 노인(남자 4355명, 여자 60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조사 결과 남녀 노인 10명 중 3명이 일을 하고 있으며, 79.3%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용돈 마련은 8.6%에 불과했다.

‘2014 노인실태조사’에 가중치를 둬서 분석한 결과 일하는 여성 노인은 건강 상태나 사회참여율에서 일하지 않는 여성 노인보다 앞섰다. 일하는 여성 노인의 사회참여율이 50.7%인 데 비해 일하지 않는 여성은 42%로 적었고, 일하는 여성 노인 중 27%가 우울증을 앓는 데 비해 일하지 않는 여성 노인은 40.4%가 우울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취업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크게 낮았다. 여성 노인 취업률은 22.3%, 남성 노인은 37%로 14.7%포인트 낮았다. 같은 취업 상태라도 남성 노인은 근로소득이 월 100만원, 여성 노인은 근로소득이 월 33.8만원에 불과했다.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동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일자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초등학교 급식도우미, 방과 후 돌봄 서비스 등 정부 제공 일자리는 물론 민간 기업과 연계한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기업, 시니어 직능클럽 등을 운영하면서 활로를 마련하고 있다. 강익구 사업운영국장은 “여성 노인들은 주로 음식 제조·판매, 재봉, 바리스타 업종에서 근무한다. 특히 노노케어같이 타인을 돕는 일을 잘 한다”고 말했다. 강 국장은 또 “돌봄, 육아, 식품 제조, 제과제빵 분야는 여성 노인들의 수요가 높다”며 “여성 특유의 섬세한 성격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라고 덧붙였다.

농촌도 살리고 노인 일자리도 얻고

특히 고령화율이 도시보다 빠른 농촌에선 여성 노인들이 생산과 가공, 유통, 서비스를 연계한 6차산업의 모델이 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사례가 많아 눈길을 끈다. 대표적 사례가 전북 완주군에 있는 뷔페 레스토랑인 ‘새참수레’다. 친환경 요리를 내놓는 슬로 푸드 레스토랑으로 완주뿐 아니라 익산, 전주의 외지인 손님들도 몰려올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전년도 매출액은 4억5000만원.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만 문을 연다. 

‘새참수레’는 노인 일자리 전문 기관인 완주시니어클럽이 2012년 11월 문을 연 고령자 친화기업이다. 직원 16명 중 14명이 60∼70대 여성들이다. 김정은(42) 대표는 “독거 어르신도 절반이나 된다. 노인 소득도 창출하고, 소비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도 제공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완주시니어클럽은 2008년부터 나이 들면서 농사일을 그만두신 어르신들을 고용해 친환경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어 가정 배달로 회원을 모집했고 ‘새참수레’가 생긴 뒤엔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지금은 전주시에 있는 ‘완주군 로컬푸드 직매장’에 두부를 납품하고 김을 구입한 후 김자반, 김부각으로 가공, 판매하고 있다. 완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인원이 60명에 달하고, 이 중 여성이 50명이다. 

여성 노인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인 인력을 고용한 사업장에서는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생산성이 낮지 않을뿐더러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노인을 고용했다가 산재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부담을 느낀다. 사고가 한 번 발생하면 보험요율이 올라가고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이라는 낙인이 찍혀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또 상시근로자 수가 높아지면 사회보험률이 높아져서 간접적인 노동비용이 올라가는 것도 기업이 부담스러워하는 대목이다.

여성 노인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도 일자리를 구하는데 장애가 된다. 교육 수준이 낮고 집안에서 살림밖에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가 차원의 노인 일자리뿐만 아니라 여성 노인들의 민간 고용 활성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은정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여성 노인 일자리 문제는 정책적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 박사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월 70만∼73만원 받고 주당 30시간 일하길 원했다. 전국에서 근로자 5인 이상의 기업 대상 2002곳을 표본 추출해 조사한 결과 기업들도 노인들에게 시간제 일자리가 더 적합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또 노인들의 기대 수준보다 더 높은 월급을 지급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지 박사는 “예전에는 기업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일자리에 노인을 고용하는 걸 힘들어했다. 하지만 노인들도, 기업도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욕구는 크다”며 “고용노동부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경력단절 여성이나 학업과 병행하는 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인만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고소득의 시간제 일자리로 삶의 질을 높이고 액티브에이징도 실현하자는 것이다.

 

전북 완주군에 있는 슬로 푸드 뷔페 ‘새참수레’에서 여성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직원 16명 중 14명이 60∼70대 여성들이다. ⓒ완주시니어클럽
전북 완주군에 있는 슬로 푸드 뷔페 ‘새참수레’에서 여성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직원 16명 중 14명이 60∼70대 여성들이다. ⓒ완주시니어클럽

시간제 일자리 창출해야 

지 박사는 “정부는 60세 이상 노인에게 적합한 직무 조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고, 고령자 특화 취업훈련 프로그램이 취업성공패키지로 통합되면서 지금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업훈련도 하지 않고 있다”며 “여성 노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뭔지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 노인들에게 적합한 직무를 개발하고 매뉴얼도 만들어서 일선 기업에 보내면 충분히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여성 노인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재취업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김미령 대구대 지역사회개발복지학과 교수는 “청년 일자리도 힘든 상황이라 노인 취업 정책이 조심스럽다”면서도 “고령 인구가 늘면서 사회가 노인을 부양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노인 스스로 일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임금피크제나 잡 셰어링을 통해 노인 일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은퇴 연령을 늦추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미국은 1983년 은퇴 연령이 폐지됐고 일본도 2년 전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의무화했다. 김 교수는 “내년부터 만60세가 은퇴 연령이 된다. 노인들은 은퇴 이후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를 ‘신춘궁기’라고 말한다”며 “은퇴 연령을 늦춰서 건강하고 능력 있는 노인들이 시간제라도 자신이 쌓아온 경험이나 지식을 사장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기업은행이 방송인 송해씨를 모델로 쓴 덕에 노인을 고객으로 많이 유치했다”며 “여성 노인 중에 일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 요리하는 남자들이 TV에 등장하면서 주방 문턱이 낮아진 것처럼 미디어가 일하는 여성 노인들의 모습을 부각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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