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24일 ‘제1회 미래를 여는 여성체육포럼’ 개최

‘여성 체육인의 일‧가정 양립 방향 모색’ 주제

“엘리트 선수들의 현실 고려한 제도 개선·연구 필요”

농구 경기 심판으로 뛰는 전직 프로선수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며 일하기가 쉽지 않다. “농구는 심판 활동이 많은 편이에요. 애를 두고 움직이려니 미안하죠. ‘애 때문에 할 수 있겠냐’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은 그런 말을 안 듣는데….” 

전 국가대표 선수 B씨는 학교 체육강사로 일하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됐다. 최근 객원 심판 자리를 얻어 체육계에 복귀한 그는 “심판 활동을 멈출 수 없어 결혼·출산을 미루는 지인도 있다”며 “육아휴직·출산휴가는 생각도 못 한다. 성차별만 없어도 좋겠다”고 했다.

 

24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회 미래를 여는 여성체육 포럼’에서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 원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4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회 미래를 여는 여성체육 포럼’에서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 원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1회 미래를 여는 여성체육포럼’이 11월 24일 오전 10시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여성신문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개최한 이날 포럼에는 여성 국가대표 선수 출신 등 체육계 인사 80여 명이 참석했다. 신정희 대한하키협회 부회장이 사회를 맡은 가운데, 전문가들은 여성 체육인의 일‧가정 양립 현황과 사례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여성 체육인의 경력 단절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대표 선수조차 은퇴 후 경력을 이어가는 경우는 극소수다. 최근 한국스포츠개발원 조사 결과, ‘가사활동을 전담’하는 여성 체육인은 65%,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는 61.4%였다. 83.7%가 “육아와 직장생활 병행이 어렵다”고 답했다. 

현행법에 따라 고용보험 가입자 누구나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체육 분야는 직업 특성상 일반 일·가정 양립 제도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수혜층도 극소수다. (일·가정 양립이 어려워) 체육 분야 진출을 포기하거나 미혼을 선택하는 여성도 많다”고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 원장은 말했다.

박 원장은 또 “심층면접 결과 많은 여성 체육인이 지원 프로그램·제도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차별과 배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며 “이는 체육 분야에서 남성을 선호하는 근거가 되고, 성차별을 강화하는 악순환”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체육인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으로는, 단기적으로 △체육 분야 직업 특성을 고려한 일·가정 양립 지원 사업 추진 △엘리트 선수 은퇴 전 지원 사업 보완 △선수 학습권 보장 정책 지속 추진·학습지원 사업 고안 등이 제안됐다. 장기적으로는 △연구용역을 통한 정책 개발 △여성 스포츠리더 양성·국제적 진출 지원사업 연계 등이 제시됐다.

박 원장은 “최근 젊은 여성들은 양성평등 의식을 갖고 부당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며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물리적 인프라 구축보다 문화적 인프라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오경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이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임오경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이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아람 한남대 교수가 프로골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아람 한남대 교수가 프로골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어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팀 감독과 전 프로골퍼 서아람 한남대 교수가 개인 경험을 중심으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과 의견을 공유했다. 

최종 토론에는 박영옥 원장, 임오경 감독, 서아람 교수, 원영신 한국여성체육학회 회장, 최성지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장, 강인애 생활체육 강사 등이 참여했다. 

임 감독은 일본 실업팀 감독 재직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며 “일본은 근로자가 은퇴하지 않는 한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지원제도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외국인인 저도 정직원으로서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 감독으로 뛰는 지금은 성적 고민이 먼저다 보니, 솔직히 모든 여자 선수들에게 지원과 혜택을 제공하기 어렵다. 아이를 낳고 3일 후에 다시 복귀하는 선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엘리트 선수들의 현실을 감안한 제도 개선·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1회 미래를 여는 여성체육포럼’이 24일 오전 10시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체육계 전문가들이 최종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1회 미래를 여는 여성체육포럼’이 24일 오전 10시 서울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체육계 전문가들이 최종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성지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장은 최근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 발표에서 한국이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부문에서 125위를 기록한 것을 언급하며 “고위직에 여성이 없고, 임신하면 노동시장에서 나가는 게 정상이 아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이런 양상을 보이는 건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말했다. 

또 “체육계 특성상 육아휴직 등을 실제로 사용하기 어렵고, 체육 관련 시설 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곳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고민이 많이 된다. 문체부 등 관계자들과 이 문제를 상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영옥 한국스포츠개발원 원장은 “어떤 사회적 문제든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 체육인의 일·가정 양립은 여성들이 부딪치게 되는 노동시장 진입 장벽, 일자리의 질과 고용의 안정성 등이 모두 중첩된 문제”라며 “어떤 문제든 공론화가 해결의 실마리다. 오늘 포럼이 공론화의 장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효선 여성신문사 대표는 “내년부터는 ‘여성체육포럼’을 아시아에서, 여성 체육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국제 포럼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라며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