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교육관행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가 속속 확인되는

요즘만큼 이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는 없을 것이다. 누가 여학생

은 수학, 과학에 태생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고 누가 여학생은 의사,

과학자로 키워질 수 없다고 은연중 단언하는가.

지난 연말 군가산점제가 헌법소원에서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교육부

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남성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관행은 사회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최근 일부 의대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심

스럽게 논의되고 있는 ‘킴스플랜’ 역시 오래된 대표적 사회 관행이

다. 무려 45년 전 여자 의대생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 국방부의 군의관

확보를 위해 도입됐던 킴스플랜은 이후 당초 목적이 변질돼 현재는 암

암리에 가장 권위있는 수련의 선발제도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의대에

여학생 진학률이 점차 높아지면서 시대에 뒤진 이 관행으로 피해자가

점점 더 많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이들 여학생들은 남자들만의 자리

를 ‘침범’했다는 따가운 눈총 외에도, 대학병원 진출과 소위 ‘메이

저 과’ 임용에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확보 문제로 이 문제에 관여했던 국방부

와 보건복지부는 킴스플랜이 존속할 필요가 없음은 시사하면서도 그

존속 여부엔 무심한 반응이다. 무엇보다 대학병원의 수련의 임용 결정

권자들은 킴스플랜에 의한 남녀 수련의의 불균형한 임용 비율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요지부동한 태도여서 더욱 더 장벽이 높음을

실감케 한다. 더구나 피해 당사자들인 여학생들은 의사 사회의 보수적

폐쇄성과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왕

따’당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킴스플랜의 폐해는 여성의 사회진출 장벽이란 문제를 넘어 여성 친화

적 의료환경 조성을 저해하는 데까지 미칠 것이다. 결국 우리 나라 여

성들이 당연히 누릴 건강권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다행히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이 성차별적 관행에 대해 검토

를 시작했다고 하니, 보다 강력한 조치로 쐐기를 박아 사회 곳곳의 남

성 우대 관행을 하나씩 없애가는데 활력을 주길 촉구한다.

강릉사건이 장애여성 인권수호 분수령되길

여성신문이 올 1월 강릉의 한 정신지체장애여성의 집단 성폭행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피해자를 위한 지원사업을 전개한 이래 정신지체

장애여성 성폭행 사건들이 곳곳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아직은 사회

편견 때문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나 피해자 부모들이 사건 공

개를 극도로 꺼리긴 하지만 이들 장애여성들도 ‘성폭행 안 당할’ 권

리가 엄연히 있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앞으로의 향방은 이들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이 강릉사건의 판

결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 판단능력이 없는 피해자의 특수상

황이 정확히 참작되지 않은 채 ‘뻔히 알면서 유혹했다’는 식의 가해

자들 주장이 비중있게 받아들여진 판결이 나온다면 모처럼 수면 위로

떠오른 장애여성 성폭행 이슈는 자칫 깊숙히 ‘잠수’할 위험이 있다.

성폭력특별법이 엄중히 적용된 판결이 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일벌백계로 보여주길 바란

다. 덧붙여 강릉사건의 정당한 해결을 위해 물심양면 헌신하는 지역

여성·시민단체들이 맥없이 주저앉지 않고 한층 지역 양심의 등대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길 바란다.

박이 은경 편집부장/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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