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 저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출간 기념 강연 열어

재벌 세습지배구조, 양심적 병역거부, 성소수자 차별 등 다룬 논쟁적 판결 재조명

헌법이 보장하는 소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게 사법부 역할

“법 해석·적용에 ‘정답’ 없어...여러 가치 간 조화·타협 모색이 중요”

“대법관으로서 많은 판결을 내렸지만, 놓친 게 많았습니다. 그게 마음에 걸리고 억울해서 책을 썼지요.”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 전 대법관이 스스로의 판결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그의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창비)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김 전 대법관이 참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제일 길게, 열심히 다퉜던 10대 판결”을 뽑아 재조명한 책이다. 재벌의 세습지배구조, 양심적 병역거부, 성소수자 차별 등 논쟁적 사안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내려졌는지 상세히 다뤘다. 당시에는 밝힐 수 없었던 판결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비판, 반성도 털어놓았다. 

송종원 문학평론가, 차병직 변호사와 예비법조인 등 80여 명이 참석한 이 날 강연회에서, 김 전 대법관은 판결 이야기와 함께 여성 법조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소회, 향후 계획 등을 밝혔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 전 대법관의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창비)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창비 제공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 전 대법관의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창비)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창비 제공

그는 2004년 48세의 나이에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는 수식어의 무게도 함께 짊어졌다. 김 전 대법관은 “항상 ‘여성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에 관한 고민, 롤 모델이 돼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그는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남성 대법관들 틈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의견을 수정하고 설득하며 6년을 보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강조한 판결을 다수 내려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진보적 목소리를 높인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남매’로 불리기도 했다. 

“출신 대학 등 사회적 공통분모를 지닌 60세 전후의 남성 대법관들이 ‘다수’였죠. 그분들의 생각의 틀을 뛰어넘어 보라고, 좀 더 다양성을 추구하라고 제게 대법관직을 주신 것 같아요.” 김 전 대법관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일하며 산 삶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자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법관 재직 시절 그는 한 달에 100건 이상, 6년간 1만여 건의 판결을 선고했다. 그러나 실제로 판결이 사회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한 고민과 논의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이 책을 펴낸 동기다. 

책 속 10대 판결 중 김 전 대법관이 가장 공들여 쓴 부분은 ‘삼성 사건’이다. 1990년대 후반,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저가로 발행해 지배권을 세습한 과정이 문제가 됐다. 2000년 이건희 회장에 대한 고소부터 2007년 삼성 특검, 2009년 대법원 판결과 이건희 회장의 사면에 이르기까지 10여 년간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대법원은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구분해 ‘회사에 대한 배임죄 성립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놓친 것”이라고 김 전 대법관은 평가했다. “주식회사의 본질, 대기업 구조 자체의 문제를 봐야 했어요. 주주와 경영자가 서로 감시·견제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나온 판결인데, 지배주주가 경영권도 행사하는 한국 현실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는 삼성 사건과 함께 사학비리 문제를 다룬 ‘상지대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조직들이 대체로 공익보다 사익에 함몰돼 있지 않느냐. 조직의 공공성·투명성에 대한 고민, 견제와 감시가 부족했다. (대법원이) 그 역할을 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했는데 못 했다”며 아쉬워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대법원의 판결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2006년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허용으로 미흡하나마 성소수자의 기본권이 인정됐다. 그러나 2011년 대법원은 “결혼했고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는 성별 정정을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소수의 기본권 보장보다 사회적 다수의 인식과 법적 안정성을 우선한 판결”이라고 김 전 대법관은 평가했다. “가족주의가 법 위에 군림하고 있기도 하고, 한국의 법제도가 가족을 내세워서 성소수자 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도 덧붙였다.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문제를 제외하면, 우리 법은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김 전 대법관은 “시대가 변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어느 사회나 젠더 감수성 발달에는 시간이 걸린다”며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법률도 시대의 변화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심과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도 10대 판결 중 하나로 꼽혔다. 김 전 대법관은 “국제 인권 문제 차원에서 꾸준히 지적받는 문제”라며 “전역한 남성들의 거센 반발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당시의 김영란 서강대 법학대학원 석좌교수. 그는 “남성, 여성보다 젠더 관점을 가진 판사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며 성인지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11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당시의 김영란 서강대 법학대학원 석좌교수. 그는 “남성, 여성보다 젠더 관점을 가진 판사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며 성인지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0대 판결은 “사회와 법의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법을 어떻게 해석할지, 사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한 사건들”이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소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게 사법부의 역할”이라고 김 전 대법관은 말했다.

다원적인 가치들 간 조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옳고 그름’의 문제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옳음’과 ‘그름’ 사이의 중간 지점을 잡아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많거든요.”  

앞서 그는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대법관 경험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겠다. 쉬운 글로 대중과 소통하는 저술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 연장 선상에서 SF 소설가로 변신할 계획도 밝혔다. SF가 헌법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틀’이라는 판단에서다.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는 이들을 그린 게 SF라면, SF는 인권과 기본권의 문제를 부르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이 서울에 왔다고 칩시다. 우리 헌법을 그들에게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 온 수많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물음도 던질 수 있겠죠. 진짜 소설은 아니고, 그런 식으로 헌법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을 써 볼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너무 판결만 썼는지, 문장이 안 돼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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