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적은 여성’ 고질적 편견 깬다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어

눈길을 끈다. 오늘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여성과 제3세계와 자연의 식

민화 위에서 기능하는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로 파악하는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의 공저 '에코페미니즘'(손덕수·이난아 옮김/ 창작과

비평사/ 1만3천원),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과 여성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셰어 하이트의 '여자와 여자'(김성기 옮김/ 롱셀러/ 7천5백

원), 남성의 시각으로 새로운 페미니즘에 대한 제안서 '나는 부드러운 페

미니즘이 좋다'(맹명관 지음/ 살림/ 7천원)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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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이후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면서 등장한 에코페미니즘은

근대성 내부에 여성착취와 환경파괴를 낳는 하나의 구조가 있다는 전제

아래 여성해방과 자연해방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한 갈

래다. 이 관점에 따르면 기계론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세계는 자

연 역시 일종의 기계로서, 인간의 의지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물질일 뿐이

다.

이 물질세계를 인식·식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주체는 백인남성의 ‘이

성’인데, 이때 자연은 남성적 이성이 정복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인 것

이다. 백인남성은 자신들의 이성 이외의 것들, 예컨대 여성이나 이민족을

타자로 분리하며 현실을 구조적으로 이원화해왔다.

그리고 자연과 여성의 이같은 분리와 종속이야말로 근대과학 및 부르주

아 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의 감춰진 토대이자 여성문제와 환경문제를

낳은 진정한 원인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또한 산업사회와 제3세계로

가르며 차별을 구조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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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에코페미니즘'의 저자들은 자연의 다양성과 리듬을 해치지 않는

인간 삶의 유형을 제3세계의 자급자족경제와 여성의 노동에서 발견하려

한다. 그리고 유전공학과 생식기술은 생명에 대한 침해임을 환기시키는

한편, 자본주의적 착취로 고통받는 제3세계 여성을 고려하지 못할 뿐더

러 정신-물질, 남성-여성의 부르주아적·가부장적 이분법을 극복하지 못

한 서구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한편 '여자와 여자'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고질적인 편견에 의

문을 던진 최초의 책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선택’ 당

하는데 평생의 운명을 걸고 은연중에 같은 여성을 경쟁자로 바라본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 세계 13개국 6천여 명의 여성들을 취재한 후 쓴 이 책은 여자들 사이에도 당연히 우정이 있음을 밝혀내는 한편, 자매는 항상 사이가 좋지 않다는 근거 없는 편견, 직장 내에

서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는 상황 등 여성과 여성의 관계에 덧씌워진 여

러 고정관념을 면밀히 분석한다. 그 결과 하이트는 가부장제가 여성간의

대립관계를 형성해 여성을 제쳐놓고 남성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것, 그러

나 여성이 여성과의 우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

하게 되면 사회는 크게 변화하게 된다는 것, 진정한 여성적 주체성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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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과격한 구호보다는 부드러운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맹명관씨

는 '나는...'에서 남성의 적극적인 후원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페

미니즘을 일상 속에서 접근하고 있다.

첫 부분인 ‘딸아, 세상은 미쳤다’에서 지은이는 1백만이 넘는 가정폭

력 실상, 원조교제, 폭력 등 부조리한 세상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여성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돌아보게끔 한다. 그리고 ‘나라면 어떠했을

까?’를 화두로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물론 그의 주장이 ‘인간

애’와 ‘가족애’를 강조하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른다 할지라도 아내

와 딸과의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론이라 남성들을 위한 가벼

운 페미니즘 입문서로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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