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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모인 40여명의 '깨녀'들이 부정한 것을 물리치고

몸의 기운을 신성하게 하는 '하미'를 입에 물고 지리산 노고

단에서 마고할머니에게 예단을 올리고 있다.

자연의 신성함 깨닫는 체험

국내 에코페미니즘의 새 전기

“유세차 오월 대보름 한반도의 영산 지리산 노고단까지 여신을 찾아 먼길을 떠나온 어여쁜 여자들이 여기 모였습니다. 부디 지리산 마고여, 이 절절한 마음의 소리를 들으셨다면 우리를 당신 품 안으로 맞아주소서…”

지난 17, 18일 지리산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40여 명의 여성들이 ‘여신축제’를 벌였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이들 소위 ‘깨녀(깨어나는 여신들의 줄임말)’들은 부정한 것을 물리치고 몸의 기운을 신성하게 하는 ‘하미’를 입에 물고 마고할머니에게 예단을 올렸다. 그리고 문수계곡에서 묵으며 역사무당 김경란씨의 지도 아래 수련과 명상시간을 가지며 자연과 합일되는 일체감을 느꼈다.

보름달이 그 어느 때보다 둥그렇고 훤하게 뜬 이 날 이 여성들은 왜 지리산 자락까지 왔을까. 그리고 ‘여신축제’는 또 무엇일까.

여신축제가 벌어진 지리산은 우리 무속신앙의 발원지로, 천신의 딸 마고가 내려와 딸 여덟을 낳아 무당으로 길러 팔도에 보내 다스리게 했다는 무조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고려시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이전에 마고는 민중들의 마음에 더 깊이 자리하고 있던 여신인 셈이다.

우리에게 ‘여신’의 개념은 매우 낯설다. ‘단군신’ 혹은 ‘하느님 아버지’ 등 보편적으로 신격은 남성에게만 부여되는 것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설령 여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그리스신화와 같은 서양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에게도 ‘여신’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만2천년 전 태평양의 뮤대륙과 대서양의 아틀란티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뒤 선대문명의 조상으로 기록된 존재는 태평양쪽에서는 ‘마고할머니’였고, 대서양 쪽에서는 멜키지덱이었다. 마고할머니에 대한 기록은 신라인 박제상이 쓴 '부도지(符都誌)'에 적혀 있다.

깨녀들의 ‘여신축제’는 바로 우리 존재의 근원인 마고할머니를 찾아 영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6, 70년대 여성해방운동에 불이 붙었고, 8, 90년대 여성의 사회진출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면,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한층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여성들이 여성의 영성·여신의 영성을 추구하는 운동을 전지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는 신화를 토대로 한 가부장제가 지구문명을 잠식하기 이전, 아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왜곡되지 않은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으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또한 하느님 아버지의 권력 아래 종속된 피조물을 해방시켜 파국에 이른 20세기 인류문명을 치유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요청이기도 하다.

에코페미니스트에게 여신은 생명의 탄생과 성장, 죽음과 소멸, 그리고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는 우주의 순환을 의미한다. 그들은 모든 존재는 지구어머니의 신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을 깨닫는 체험은 에코페미니스트가 지녀야 할 필수조건이다. 여신축제 혹은 마녀축제에서 치르는 모든 의식과 놀이는 이런 체험을 위한 준비이다. 이러한 자연의 신성을 깨닫는 체험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키워주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어, 세상을 바로잡는 용기를 북돋는다. 성차별, 인종차별, 빈부격차, 물질만능주의 등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고 평등과 조화, 정의와 자유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이번 ‘마고축제’는 유럽 등지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마녀축제’ 혹은 ‘여신축제’의 한국 버전으로, 국내 에코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계기였다. 이 ‘여신축제’는 앞으로도 매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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