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여성환경연대 기획/강남순 외 14인 공저/1만5000원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여성환경연대 기획/강남순 외 14인 공저/1만5000원

생명과 연대, 모성, 살림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15인의 자기 성찰과 모색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들의 종착역 같은 느낌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궁극적으로는 에코페미니즘을 지향한다. 생명과 연대, 모성, 살림이라는 에코페미니즘의 키워드가 페미니즘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은 물론 인간과 자연 전체를 위협하는 생명 위기의 시대에서 다시 인간과 자연의 삶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실천적 사상이다. 여성환경연대가 기획한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시금치)는 현장 운동가와 교수, 연구자 등 15인의 자기 성찰과 모색을 담아낸 책이다. 여성‧환경단체 활동가, 농부, 직장인 등 제각각 다른 배경과 이력을 가진 30대부터 60대까지의 저자들은 모두 페미니즘과 에콜로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공간에서 대안적인 삶을 일구는 에코페미니스트들이다.

신학자인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교수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근대화를 통해 잃어버린 가치인 ‘생명 돌봄’과 ‘함께-살아감’의 실천이라는 에코페미니즘의 가치를 들려준다. 한국YWCA연합회 이윤숙 부장은 성형 산업으로 대표되는 몸을 둘러싼 전쟁터에서 다양성과 순환이 내재하는 몸을 알고 느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활동가는 돌봄이 희소해진 시대에 지치고 불행한 도시인에게 돌봄 노동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해준다.

제주도로 귀농해 스물네 계절을 보내며 정착과 유목 사이를 오가며 1인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라봉). 밀양 할매들에게서 가부장제의 틈을 메우는 울력과 자립을 배워 도시에서 맷집 있는 성소수자로 살아갈 힘을 얻은 이야기(나영), 뼛속까지 도시인이던 대학원생이 농촌 할머니들을 찾아가 토종씨앗과 토착농사 지식을 기록하며 연구하는 동안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먹을거리를 새롭게 인식했던 경험(김신효정) 등도 깊은 울림을 준다.

공동체가 가져야 할 보편적인 가치인 환대와 우정이 있는 마을살이에 대한 고찰을 들려주는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는 “마을 사회가 여성들을 자원봉사자로 취급하며 전통적인 성역할을 고착시킨다는 것을 마을공동체운동에서 깨닫게 됐다”며 “살림과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 같다면 모순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성들은 느리지만 마을공동체운동 속에서 성장해가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상화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서구 에코페미니즘의 역사와 현재의 지형을 소개하면서 “서구의 에코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데 머물지 말고 아시아 에코페미니스트들이 더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코페미니즘은 어떤 단일한 개념 틀을 공유한다기보다는 실천 측면에서 열려 있는, 유연한 정치적‧윤리적 연대이자 동맹이다. 동시에 이러한 현장을 밑바탕으로 삼아, 이론 영역에서 부단히 생성‧발전하는 다양한 이론과 담론의 집합이기도 하다. 나는 서구 에코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으로부터 전 지구적으로 적용되는 보편타당성을 이끌어낼 수는 없으며 그러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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