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예멘·이라크·인도 여성인권운동가 4인 좌담회 ①

모니카 한젬밤 인도 Women and Youth for Peace and Development 창립자

리합 야히아 파라 살람 알살가비 예멘 NGO Vision for Development 프로젝트 매니저

파티마툴카하르 알리 엠. 후세인 알-카니 이라크 반 가정폭력 단체 Speak Now 공동 창립자

웨기리야 위라소리야쥐 파드미니 니로쉬카 웨기리야 스리랑카 인권단체 Law and Society Trust 연구원·변호사

여성은 전후 평화 재건 과정의 중요한 주체

평화 확립 위해선 남성의 지지·전 지구적 연대 필수

 

지난 18일 이화여대에서 여성신문 주최 스리랑카·예멘·이라크·인도의 여성인권운동가 4인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파티마툴카하르 알리 엠. 후세인 알-카니(이라크), 모니카 한젬밤(인도), 웨기리야 위라소리야쥐 파드미니 니로쉬카 웨기리야(스리랑카), 리합 야히아 파라 살람 알살가비(예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8일 이화여대에서 여성신문 주최 스리랑카·예멘·이라크·인도의 여성인권운동가 4인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파티마툴카하르 알리 엠. 후세인 알-카니(이라크), 모니카 한젬밤(인도), 웨기리야 위라소리야쥐 파드미니 니로쉬카 웨기리야(스리랑카), 리합 야히아 파라 살람 알살가비(예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류 역사를 통틀어 여성들은 전쟁의 참전자이자 협력자, 희생자였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여성의 전쟁’은 남성들의 역사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2015 노벨문학상 수상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예리한 지적이다. 왜 여성은 전쟁 폭력의 ‘피해자’, 남성의 보호가 필요한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만 기억될까? “갈등을 봉합하고 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여성들도 많았지만,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 하에서 이들의 활약은 가려지거나 무시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18일 오후 여성신문 주최로 이화여대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스리랑카·예멘·이라크·인도의 여성인권운동가들은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지만, 동시에 갈등 해소와 평화 재건의 중요한 주체”라고 입을 모았다. 이화여대의 여성활동가국제교육프로그램(EGEP,  Ewha Global Empowerment Program) 참석차 방한한 모니카 한젬밤(Monika Khangembam) 인도 여성단체 ‘Women and Youth for Peace and Development’ 창립자, 리합 야히아 파라 살람 알살가비(Rehab Yahya Fara Sallam Alshargabi) 예멘 NGO ‘Vision for Development’ 프로젝트 매니저, 파티마툴카하르 알리 엠. 후세인 알-카니(Fatimatulzahraa Ali M. Hussein Al-Kani) 이라크 반 가정폭력 단체 ‘Speak Now’ 공동 창립자, 웨기리야 위라소리야쥐 파드미니 니로쉬카 웨기리야(Wegiriya Weerasooriyage Padmini Niroshika Wegiriya) 스리랑카 인권단체 ‘Law and Society Trust’ 연구원·변호사 등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성학자 최형미 씨가 사회를 맡았다. 이들은 “진정한 평화 확립을 위해선 여성 임파워먼트뿐 아니라 남성들의 지지와 전 지구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인권단체 Law and Society Trust 연구원이자 변호사인 웨기리야 위라소리야쥐 파드미니 니로쉬카 웨기리야(Wegiriya Weerasooriyage Padmini Niroshika Wegiriy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스리랑카 인권단체 Law and Society Trust 연구원이자 변호사인 웨기리야 위라소리야쥐 파드미니 니로쉬카 웨기리야(Wegiriya Weerasooriyage Padmini Niroshika Wegiriy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도 여성단체 ‘Women and Youth for Peace and Development’ 창립자인 모니카 한젬밤(Monika Khangembam)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도 여성단체 ‘Women and Youth for Peace and Development’ 창립자인 모니카 한젬밤(Monika Khangembam)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스리랑카 긴 내전 이어 과거사 청산으로 진통 

남편 실종 후 생계 떠맡은 여성들...생활고로 신음

최형미 : 여러분들의 나라에선 오늘날까지도 무력 다툼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여성들이다. 각국 여성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나? 

웨기리야 : 오늘날 스리랑카는 기나긴 내전 이후 과거사 청산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법적 실종·사망선고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많은 여성들이 내전으로 죽거나 실종된 남성 가장의 유산 상속, 자산 소유권 이전을 하지 못해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여성 대부분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아버지나 남편에게 의존해 살아왔다. 군대에 차출된 남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부담을 안게 됐다. 스리랑카 북부에서만 여성 4만 명이 이같은 이유로 가장이 됐다. 2012년 통계를 보면 내전으로 남편을 잃은 스리랑카 여성이 71만 6703명, 여성 가구주가 127만 293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엄청난 심리적 트라우마와 경제난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가장이 남긴 빚까지 떠맡는 경우도 있다. 견디다 못해 재혼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원 자산 소유주인 남성의 법적 사망 증명서 없이는 이런 문제를 조정하기가 어렵다. 정부는 최근에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기구를 설치하고, 실종자 가족을 위한 법적 구제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성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새로운 마을에 정착한 여성들이 군인 등에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재정착 과정에서 여성 가장들이 새로운 지역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한다. 또 피임을 하지 못해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거나, 병을 얻는 여성들도 있다. 

인도 정부와의 갈등 이어져온 동북부 마니푸르 주 

성폭력을 진압 수단으로...피해자는 ‘쉬쉬’ 

한젬밤 :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강간 등 여성폭력은 오래전부터 적을 모욕하고 사기를 꺾는 ‘전술’로 활용돼왔다. 인도 중앙정부의 탄압을 받아 온 동북부의 마니푸르 주도 예외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보낸 주둔군이 악명높은 ‘군특권법’(AFSPA)을 악용해 지역민들의 인권을 짓밟아 국제적 비난이 일었다. 마니푸르에선 1980년대부터 여성폭력이 급증했고,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마니푸르 여성 2만여 명이 남편을 잃었다. 성폭력을 전쟁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묵인하고 방조하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 고문 등을 저지른 군인들이 훈장을 수여하고 높은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정부 관련 기구나 인권 단체에서 인도 정부에 마니푸르 여성들의 문제에 관한 정책 제안을 하지만 모두 묵살됐다. 

또 인도엔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위한 심리치료·지원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내 아들이 전쟁통에 살해당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내 딸이 강간당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려면 보통 용기로는 안 된다. 피해 여성뿐 아니라 그 자녀, 소속 공동체까지 낙인을 찍힌다. 전쟁으로 남편이나 아버지를 잃고 갈 곳 없는 처지에 놓인 여성들은 ‘만만한 여성’으로 낙인찍혀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에 나서는 여성들도 있다. 

교육도 못받은 여성들, 예멘 내전 중 생활전선에 떠밀려 

예멘 여성 92%가 가정폭력 경험

알살가비 : 내전 중인 예멘에서도 많은 여성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남편과 아들, 오빠 등을 전쟁터로 보낸 후 어쩔 수 없이 가장이 된 여성이 많다. 이들 대부분이 교육도 못 받고 직업도 없어서, 홀로 생계를 꾸려 나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멘은 내전이 발발하기 전 전체 노동인구 중 여성이 1/3 이하에 불과했을 정도로 남성 중심적인 나라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여성도 많다. 타지로 망명해 기초적인 보건·교육·취업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성 사업가들도 내전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UNDP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8월까지 예멘 여성이 소유한 회사의 절반가량이 문을 닫았다. 

또 예멘에서 여성 폭력은 매우 심각하고 일상적인 문제다. 2013년 예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예멘 여성의 92%가 대부분의 폭력이 가정에서 일어난다고 답했다. 

이라크 전쟁의 상흔 속 극단주의·테러 공포 심각해

여성폭력 일상화...IS 성노예로 전락하기도

알-카니 : 내 나라는 다양한 민족, 언어, 문화와 종교를 이라크라는 이름 아래 품었던 아름다운 나라였다. 수십 년째 전쟁이 이어지면서 여성들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극단주의의 희생양이 될까 봐, 언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지 몰라 공포에 떨고 있다. 생계를 위해 가사도우미 등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리는 여성도 많다. 빈곤과 사회적 불안정은 아이들의 미래마저 앗아가고 있다.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를 도와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이들이 많다. 여자아이들은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일찍 결혼해 출가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슬람국가’(IS)에 끌려가 성노예가 된 여성도 적지 않다. 

이라크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여성폭력은 가정폭력이다. 이라크엔 남자들이 존경받기 위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교육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남성 가장이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정에서 그릇된 방법으로 해소하기도 하고, 잘못된 종교적 신념으로 여성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여성은 남성을 받들고 모든 멸시를 견디되 묵묵히 가족을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받는다. 종교적 이유로 12살에 엄마가, 26살에 할머니가 되는 여성들도 있다. 청소년기에 응당 누려야 할 권리를 모조리 빼앗기고 가족을 위해 봉사할 것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라크 법은 아직 이런 문제를 충분히 방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스리랑카에선 다수민족 싱할라족과 소수민족으로 분리독립을 요구했던 타밀족 간 분쟁이 1983년~2009년까지 30여 년간 이어졌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인권 유린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리랑카인들은 타밀 대학살에 대한 스리랑카 정부의 책임과 미국·영국 등 관련국의 책임을 묻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예멘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우디가 지원하는 정부군과 이란이 후원하는 시아파 반군 간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평화협상이 결렬되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UN은 예멘의 인도주의 위기 등급을 최고 수준으로 상향했다. UN에 따르면 22개주 중 21곳이 내전으로 피해를 입었고, 인구의 80% 이상인 2110만명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OCHA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최소 85개 인도적 기구들이 예멘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침공 이후 13년이 흘렀지만, 이라크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불안정과 테러의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엔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 종료를 앞두고 바그다드 카라다 지역 쇼핑센터에서 대규모 폭탄 테러가 발생, 최소 215명이 숨졌다. UN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폭탄테러와 군사 공격 등으로 숨진 이라크 민간인은 약 16만명, 지난 6개월간 숨진 민간인과 군인은 5000여명에 달한다.
*인도 중앙정부는 분리독립을 원하는 단체나 주를 탄압하기 위해 특별법을 두고 있다. 동북부 마니푸르주에서는 인도 군인들이 상부의 허락 없이도 필요시 발포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등으로 악명높은 ‘군특권법’(AFSPA)을 남용해 주민들을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해 비판을 야기해왔다. 마니푸르 사람들은 AFSPA 폐지와 주둔군 철수, 언론·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 보장을 요구해왔다.  

(이어보기 ▶ 전쟁 피해자에서 사회 변혁 주체로 우뚝 선 아시아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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