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7 협곡을 넘어서자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임금 줄지만 경력단절없이

육아 가능해 빠르게 확산

사용자 작년보다 46.9%↑

사업주 위주 예외 조항 걸림돌

대체인력 제도 활성화 필요

 

일·가정 양립 제도 중 하나인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가 확산되려면 눈치보지 않고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문화와 함께 대체 인력 제도가 안착돼야 한다. ⓒ일러스트 이재원
일·가정 양립 제도 중 하나인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가 확산되려면 눈치보지 않고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문화와 함께 대체 인력 제도가 안착돼야 한다. ⓒ일러스트 이재원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하는 시간을 단축하면 그만큼 임금도 줄어들지만, 부모육아휴직(이하 육아휴직)에 비해 소득의 감소폭이 적고 경력단절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이후 다시 전일제 근무로 복귀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근로자가 사용하고 싶어도 일정한 사유만 있으면 사업주가 거부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어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전일제 근로자가 육아휴직 대신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단축 후 근로시간은 1주에 15시간 이상이어야 하고 30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임금은 줄어든 근로시간에 비례해 받고, 감액된 임금의 일부(통상임금의 60%)는 고용보험에서 지원한다. 예를 들어, 주 40시간 일하고 월 200만원을 받던 사람이 주 2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면 월 160만원을 받게 된다. 이 때 회사가 100만원, 고용보험이 60만원을 부담한다. 월 200만원을 받는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쓰면 받는 월 80만원(통상임금의 40%)과 비교해 더 많이 받는 셈이다.

제도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기간만큼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최대 1년인 육아휴직 기간을 단축근무와 나눠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을 6개월 사용하면 남은 6개월 동안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최대 2년으로 늘어난다.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분할도 3회까지로 확대된다. 단, 육아휴직만 쓸 경우에는 최대 2회만 쓸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육아를 병행할 수 있어 사용자도 급증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1년 39명에 불과했던 사용자는 지난해에는 2061명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해 2분기에 비해 46.9%(1456명) 증가하는 등 확산 속도가 빠르다. 특히 인력 공백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300인 미만 기업의 활용 비율이 높았다. 올해 상반기 300인 미만 기업의 단축 근무 사용자는 210명으로 전체의 88.2% 차지한다.

아직 사용자가 많지 않지만 일단 단축근무를 경험한 이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2012년 6월 첫 아이를 낳은 30대 김모씨는 육아휴직 대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1년간 이용했다. 김씨는 “퇴근 시간을 2시간 앞당겨 4시에 퇴근했는데, 밀린 집안일도 하고 이유식도 직접 만들어 먹일 수 있고 모유수유도 계획했던 15개월까지 할 수 있었다”며 시간 활용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가장 만족했다.

사용자는 늘고 있지만 전체 육아휴직 대상자에 비교하면 아직 일부에 그친다. 현실에선 ‘사내 눈치법’ 탓에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7세, 5세 두 자녀를 키우는 이모(29)씨는 회사 인사팀에 단축근무에 대해 문의했다가 쓴소리만 들었다. 이씨는 “제가 빠지는 시간만큼 대체할 인력을 찾아야 하는데 인원 충원이 어렵다면서, 다른 부서원들이 부담을 나눠야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하더라”며 “왜 사내 눈치법이 법보다 위에 있다고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임신 중인 박모(36)씨도 “말이 단축근무지, 가능한 회사가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동료들이 바쁘게 일하는데 혼자 일찍 퇴근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차라리 그런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육아휴직이 마음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조모(39)씨는 육아휴직 제도와 육아기 단축 근무제를 별도로 사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조씨는 “아이가 3세 이전일 때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많은 여성들이 경력단절 위기를 겪는다”며 “이 시기들을 잘 넘기고 일에 전념할 수 있으려면 육아휴직과 단축 근무를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1년씩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2015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도입한 기업은 30.2%에 그쳤다. 지난 1년 동안 단 한 명이라도 제도를 사용한 회사는 전체의 6.1%에 불과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시행하는 업체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단축된 근로시간으로 인한 동료직원의 업무량 증가’를 꼽았다. 업무 공백으로 인한 부담을 동료 근로자들이 나누는 식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사 체계를 고치지 않는 한 제도가 있어도 사용하기 힘든 구조는 바뀌기 힘들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가정 양립제도와 서비스의 공급’ 보고서에서 “정부가 대체인력뱅크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대체인력 확보에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절반 이상(55.5%)의 사업체가 대체인력뱅크를 모르고 있는 만큼 인지도를 높이고 우수하고 다양한 대체인력을 필요한 때에 중계하는 등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일정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가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녀평등고용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근로자의 근무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 배우자가 육아휴직 중인 경우, 사업주가 대체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14일 이상 노력하였으나 채용하지 못한 경우, 업무 성격상 근로시간을 분할해 수행하기 곤란하거나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등에는 허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법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면 사업주는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돼있다. 만일 이유 없이 허용하지 않는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면 근로시간 단축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사업주가 대체할 만한 인력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경우도 법이 정한 예외 조항에 해당될 수 있다. 편법으로 근로계약을 10개월씩 쪼개기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어 비정규직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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