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연합,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등 14개 여성단체가 10월 29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 시위’를 열고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등 14개 여성단체가 10월 29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 시위’를 열고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서구 여성운동사에서 낙태 합법화는 여성운동이 추구한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는 출산주체로서 여성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낙태를 했을 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변변한 지원도 하지 않는 국가가 남성은 놔두고 여성만 처벌하는 것은 불공평하면서 여성의 신체적·자주적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일 뿐이다.

국가가 임의로 위탁한 낙태의 자유

이런 의미에서 내 몸을 내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권리의 상징으로서 낙태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반면 한국 여성운동에서 낙태권은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낙태 처벌 형법이 이미 1953년 이후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여성은 사실상 낙태할 ‘자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국가가 한시적이며 임의로 위탁한 자유일 뿐이었다.

1960년대 이후 전개된 압축적 근대화 과정은 공적영역 뿐 아니라 사적영역에서도 국가의 강력한 통제‧관리 기능이 작동했던 개발독재시대였다. 막걸리 마시다가 대통령 욕을 해도 빨갱이로 몰려 잡혀 가던 시절, 국가는 산아제한을 위해 여성의 몸에 개입하는 MR(Mensturation Regulation, 월경조정술) 사업을 강력하게 전개했다. 보건소를 중심으로 국가 주도 낙태를 허용한 것이다. 1973년 모자보건법을 제정해 시행령에 낙태 가능 기한을 임신 28주(7개월)로 명시한 것은 1974년 시작한 MR사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낙태수술 시 여성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는 사실상 죽은 법이었다. 드러내놓고 하지는 못하지만, 여성이 원하면 언제 어디서나 사실상 낙태가 가능했다. 낙태는 기혼여성에게는 사후피임, 비혼여성에게는 ‘미혼모’라는 원치않는 임신의 결과를 피하는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2009년 낙태 가능 기한이 임신 24주로 조금 단축된 변화와 관계없이 한국여성은 낙태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태아 감별을 통해 여아 낙태가 급속히 번졌지만 그에 비례해 경찰이 바빠지거나 교도소 자리가 채워지지는 않았다. 서구 여성운동이 오랜 기간 국가와 맞서 쟁취한 낙태의 자유를 한국여성은 국가가 앞장서 부여해 준 모양새로 지난 반세기를 살아왔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 그동안 누려왔던 낙태의 ‘사실상 자유’가 자유가 아닌 듯한 상황이 전개됐다. 2009년 거의 700명에 가까운 산부인과개원의모임이 그동안 해온 ‘불법낙태’를 스스로 반성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했다. 물론 고백한 불법 낙태로 처벌받은 의사 소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종교적‧윤리적 이유에서 시작된 의사의 낙태 거부는, 지속적 저출산 현상과 맞물려 국가가 위임했던 낙태의 자유를 거둬들이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른바 ‘강력한 단속’ 움직임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낙태 거부 의사 모임이 낙태 시술 의사를 고발하고 국가는 강력한 단속을 하는 모양새는 오래 가지 않았고 낙태 이슈는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그 대가로 여성이 부담해야 할 낙태 비용만 급상승했다. 그리고 여전히 10~30만 건 정도로 추산하는 낙태 현실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비혼여성이 출산을 선택하는 나라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돈벌이에 이골이 난, 사회·경제적 이유로 찾아오는 여성문제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는, 수술하고 돈만 벌면 되는 산부인과 의사’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공문을 정식으로 받았다. 분명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표현이므로 지면을 빌어 사과한다.

그러나 ‘일부’ 산부인과 의사의 사회참여적 노력과 이에 호응한 정부의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종합대책(2010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산부인과 의사는 더욱 지하로 숨어들어간 낙태 시장에서 동료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갑자기 낙태의 ‘자유’를 빼앗긴 여성에게 남은 것은 은밀하게 형성되는 높은 비용부담 뿐이다.

2010년 대책 이후 분만 수가가 인상됐지만 낙태 시술의 대가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생명존중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면서 정부 주도 사회협약식이 이뤄지고 한부모 의료비·양육비 지원이 월 20만원 수준이 안 되게 도입됐으며 129 콜센터에 낙태신고·상담 업무가 추가됐다. 그러나 비혼여성이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보장체계 구축은 보이지 않고 한부모에 대해서와는 또 다르게 쏟아지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강하다.

기존 낙태불법화 체계는 국가가 여성의 몸 문제에 정책적 필요에 따라 얼마나 억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토대가 된다. 산아제한이 필요하면 여성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출산 이전에는 사실상 어느 때나 낙태를 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했다. 저출산이 지속되는 상황이 되자 불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동안 암묵적으로 허용했던 낙태의 자유를 거두는 시도를 최근 몇 년동안 하고 있다. 그런데 비혼출산의 결과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정책 어젠다의 우선 순위에 있지 않다. 여기에서 낙태 합법화 필요성이 나온다.

생명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낙태 합법화를 해야 한다. 국가의 자의적 필요성에 따라 줬다 뺏는 낙태의 자유로 인해 해마다 수십만 여성이 남의 눈을 피해 산부인과 의사의 처분에만 몸을 맡기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좋은 의사 만나면 하다못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듣고 연결해주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찾아온 여성을 그냥 현찰 지불하는 손님으로만 보는 ‘일부’ 의사를 만나면 주고받는 말 한마디 없이 ‘아이만 지우고’ 수술실을 나서게 된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낙태를 이미 결심한 여성과 의사’의 단순한 만남 구도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낙태 합법화가 여성이 아무 때나 낙태의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임신 24주가 아니라 12주로 낙태 가능 기한을 줄여야 할 것이고, 원치 않은 임신 문제를 상담하고 지속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서비스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당사자 여성,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의료서비스 전달체계가 복합적으로 만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낙태의 자유, 낙태 합법화를 국가에 요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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