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과 성평등성이라는 개념이 확장돼야 할 때다. 지난 3월 열린 3.8세계여성의날 기념행사 ‘여성, 대한민국을 확 바꾼다!’에서 결의문이 채택되며 축포가 터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해방과 성평등성이라는 개념이 확장돼야 할 때다. 지난 3월 열린 3.8세계여성의날 기념행사 ‘여성, 대한민국을 확 바꾼다!’에서 결의문이 채택되며 축포가 터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흔히 ‘옷깃을 스치는 것도 인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옷깃’을 스치는 건 보통 사이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아주 친밀한, 그러니까 서로 포옹할 수 있는 사이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전적 의미로 옷깃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도록 된 부분 혹은 양복 윗옷에서 목둘레에 길게 덧붙여 있는 부분’을 뜻한다. 그래서 ‘옷깃을 여미다’ 혹은 ‘옷깃을 세우다’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인연을 강조할 때 의미하는 혹은 그런 의미라고 짐작하는 건 옷깃이 아니라 ‘소매깃’쯤 되는 것이다. 옷깃이 스치려면 서로 안을 때나 가능하다. 그렇다면 친밀한 인연이다.

고정관념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되면서 틀린 내용조차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아’ 하고 말해도 ‘어’라고 알아듣는 유연성(?)의 능력을 지닌 언어와 사용자의 사례쯤 되겠다.

이왕 옷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요즘은 간혹 유니섹스 타입의 옷들에서 남녀 구분 없이 같은 위치에 단추와 지퍼가 달린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자의 옷은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단추가 오른쪽에, 여자는 왼쪽에 달린 경우가 많다. 그리고 등 뒤의 단추나 지퍼의 옷은 여자들에게만 있다. 늘 입는 옷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러면서 왜 그런지는 묻지 않는다.

단추는 고대시대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단추가 일반화된 것은 중세 때부터다. 단추는 문명의 상징으로 발전했고 패션의 주요 부분이 됐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단추는 장식과 실용의 역할이 더욱 활성화됐다. 특히 귀족들에게 패션에서 단추는 자신들의 신분을 상징하고 과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남자들은 ‘자립적’ 존재이니 자신이 옷을 입고 단추를 여민다. 따라서 입는 사람의 편에서 볼 때 오른쪽에 단추가 있어서 다루기 쉽다.

반면 귀족 여성들은 ‘보호하고 챙겨야 할’ 존재이니 옷을 입혀줄 하녀의 편에서 볼 때 입은 사람의 왼쪽에 단추가 있어야 편하다. 왼쪽의 단추는 누군가 옷을 입혀주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니 신분의 상태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을 것이다. 남성보다 여성이 유연해서 등 뒤 단추가 있는 게 아니라 입혀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게 가능했을 뿐이다.

그런 현상이 일반화되니 ‘당연히’ 남녀 옷에 따라 단추의 위치가 다른 것이다. 심지어 현대의 산물인 지퍼조차 성별에 따라 방향이 다르다. 내가 옷을 입으면서 왼손으로 단추를 채우고 지퍼를 올리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으레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니 거기에 적응하면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위치를 ‘내 입장에서’ 편하게 바꾸는 건 어려운 일 아니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지만. 익숙하다는 건 그만큼 따지고 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경제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한번 적응하고 순치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친다.

왼손은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른손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왼손잡이는 신체적 소수자들이다. ‘오른손’이라는 말이 ‘옳은(right)’이라는 말에서 갈래를 낸 말이라는 걸 비춰보면 왼손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실제로 영어에서 ‘left-handed’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다. 여성의 옷에 달린 왼쪽 단추를 여미려면 왼손을 쓴다는 의미에서 여성들은 ‘left-handed’라는 말에 순응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소수자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는 여성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성숙한 사회란 소수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다. 여성해방과 성평등성이라는 개념이 확장돼야 할 지평이 발견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물론 모든 것을 시시콜콜 따지고 기원과 처음 목적 등을 모두 캐내는 건 쓸데없는 시비일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우리가 어떻게 순치되고 추종하는 지를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21세기라고 다르지 않다. 구습을 깨뜨리고 미래 가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면 촘촘하게 챙기고 캐내 버릴 건 버리고 바꿀 건 바꿔야 한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는 것도 그런 까닭 아닌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