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동아시아여성포럼-새로운 세기, 새로운 여성

동아시아 NGO 대표 3백여 명 참가 - 5회 대회는 2003년 홍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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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 코디네이터가 지난 2년간 변화한 여성의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제4회 동아시아여성포럼이 지난 9월 4일부터 7일까지 대만 타이페이에서

개최됐다. 홍콩, 일본, 몽골리아, 한국, 러시아, 대만, 티벳의 여성 NGO(비정

부기구) 대표 3백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치러진 이번 행사는 ‘새로운 세

기, 새로운 여성’이란 주제 아래 인권, 가정폭력, 건강, 문화 등 9가지 분야

의 여성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대만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불

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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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참가자들은 행사장 밖에 부스를 설치, 2001년 달력과 카드를 팔았다. 수익금은 북한 여성을 위한 생리대와 아기분유를 사는데 쓰이게 된다.(왼쪽)

또한 ‘삼소회’와 함께 대만 민요 ‘고산청’을 불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오른쪽)

95년 북경 세계여성대회 준비를 위해 모인 아시아 여성NGO들이 지속적

인 연대의 필요성을 느껴 정례화시킨 동아시아여성포럼은 북경대회 이전인

94년 일본 개최를 시작으로 2년마다 개최국을 옮겨 이어왔다. 2회 한국, 3회

몽골 대회를 거쳐 올해 대만에서 7개국 여성들이 참여한 가운데 치러졌고,

5회는 2003년 홍콩에서 열리게 된다.

한국 NGO 대표 59명 참가 북한여성 지원 부스 설치

한국은 코디네이터 한지현 원불교여성회(광운대 교수) 회장을 비롯하여

한국 여성의전화연합 신혜수 대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박영혜 국제협력위

원장, 여성장애인연합회, 삼소회 등 총 59명이 참여해 개최국인 대만 다음으

로 많은 인원이 함께 했다.

첫날 저녁에 마련된 개회식에는 장보야 대만 내무부장관이 자리해 환영

의 뜻과 함께 여성장관으로서 여권신장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

다고 전했고, 주최측이 마련한 문화행사에는 대만의 8개 부족이 나와 전통

춤을 보여주었다. 본격적인 포럼이 진행된 둘째 날, 포럼에 앞서 여수련 대

만 부총통이 기조 연설을 했다. 천수이벤 대만 총통의 러닝메이트로 대만

여성인권 신장에 혁혁한 공을 세운 여수련 부총통은 새천년이 요구하는 여

성상에 대해 설명한 뒤 전체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연대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포럼의 주요 의제인 ‘여성과 고용’, ‘여성과 인권’에 관한 주제발

표와 함께 각 나라의 국가보고서 발표, ‘여성과 가정폭력’ 등 세부 주제

에 대한 분과토의가 이루어졌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각 참가국이 준비한 문

화 행사가 펼쳐졌다. 한국은 참여하지 못한 북한여성 자매에게 띄우는 메시

지 낭송, 미리 준비해 간 대만 민요 ‘고산청(高山靑)’ 등을 종교평화를 주

창하는 원불교·천주교·불교의 여성성직자 모임 ‘삼소회’와 함께 불러

큰 호응을 받았다. 한편 한국 참가자들은 포럼 기간 중 행사장밖에 부스를

설치해 2001년 달력과 카드를 판매하였는데, 수익금은 북한 여성을 위한 생

리대와 아기 분유를 사는 데 쓰이게 된다.

다음 날인 6일에는 주요 의제인 ‘여성과 e-영역’에 관한 주제발제가

있은 후 교육, 건강 등 9가지 세부주제에 대한 워크숍이 계속됐다. 마지막

날엔 워크숍 결과와 결의문, 행동강령이 공식 발표됐다. 이날 폐회식에는 오

숙진 대만 총통 부인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 그는 한국의 여성 장애우

들에게 “장애여성들이 이같은 공적인 행사에 참여한 데 감동받았다”면서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참여하자고 격려했다.

세계화, 빈곤의 여성화 부추겨 고용불안, 하위직종화도 위험 수위

이번 동아시아여성포럼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세계화(globalization)에 따

른 여성문제의 구조화와 처음으로 참여한 티벳 여성의 인권침해 현실이었

다.

여성의전화연합 신혜수 대표가 기조 발제한 ‘여성과 경제’ 부분에서

특히 세계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부정적 기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

다. 진행된 논의에 따르면 무한경쟁의 자유주의 경제정책 아래 여성 경제활

동인구는 수적으로 증가했지만, 수출주도형 세계화 추세에서 여성은 여전히

값싼 노동력에 불과하다. 어떤 분야는 여성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은 낮은 임금에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분야, 예

컨대 의류제조업이나 구두·인형제작, 전산입력작업, 난이도가 낮은 조립산

업의 중간관리직에 한해서이다. 이런 산업은 이제 많은 나라에서 사양산업

이 되고 있다. 결국 ‘세계화’는 일부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 데는 기여했

을지 모르나 여성, 특히 경제위기를 겪은 아시아 여성들에게는 여성의 빈곤

화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구조적으로 고착시키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부

정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비용 감축을 이유로 여성을 일용직·임시직으로 채용하는 형태도 여성의

고용불안을 심화시키는 부당한 처사로 지적되었고, 급증하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섹스산업으로의 유입 등이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이

와 함께 신자유주의 물결을 탄 세계화와 맞물려 불어닥친 아시아의 경제위

기가 여성 우선 해고라는 또 다른 병폐를 낳았고, 경제가 회복되어도 여성

의 실업률은 회복되지 않는 문제 등이 주요하게 논의됐다. 참가자들은 작업

장에서의 폭력을 포함한 모든 차별에 대항할 것,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법

적 권리를 위해 투쟁할 것, 고용과 직업훈련에서의 평등, 공동재산권 확보,

빈민여성을 위한 사회적 안정망 구축 등의 국가적 운동 방향을 결의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 처음으로 참석, 공식 제기된 티벳 여성의 인권침해 현

실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중국내 소수민족으로 독립투쟁을 하고

있는 티벳은 중국에 종교적 자유는 물론 인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주요

타깃이 되고 있는 여성 성직자를 비롯하여 여성 정치범 가운데도 성폭력 피

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형편이다. 포럼에서 발표된 여성정치범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가해 현황은 말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장총 개머리판으

로 온몸을 때리는 것은 물론 여성의 성기나 항문 등을 막대기로 가해하여

불구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티벳 여성인권 침해 핫 이슈 “전체 여성 문제” 인식 공유

이에 더해 중국은 자국민 이주 정책으로 인해 티벳 여성의 출산을 제한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작 티벳 원주민보다 중국 이주자가 더 많은 가운데

티벳 여성은 낙태와 피임을 강요받고 있다. 티벳 대표로 참가한 돌카는

“티벳의 문제는 티벳만의 문제가 아닌 여성인권의 문제”라며 관심을 촉구

했고, 포럼 참가자들은 이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키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국가적으로 연대할 것을 결의했다.

이 문제는 결의문 발표 과정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결의문에

명시한 티벳여성을 비롯하여 북한여성, 군사점령지역의 여성, 그리고 여성

이민노동자에 대한 언급을 한 참가자가 삭제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명문화할 경우 중국을 자극해 홍콩 대회때 티벳과 대만 등이 참여하

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회 자체가 위태롭지 않겠냐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

나 다른 많은 참가자들이 “동아시아여성포럼이 NGO 대회인만큼 NGO 정

신을 살려 문제의 문구를 포함하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 해결해가야 한다”

고 강하게 주장했다. 찬반논란 끝에 각국 대표들이 투표하여 이 문제를 결

의문에 명시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결의문에서는 세계화가 일부 여성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지만, 빈곤

의 여성화, 하층민화, 하위직종화를 가속화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표명했다. 그리고 농촌여성과 장애여성, 무보수로 일하는 여성들에 관심을

가질 것과 정보통신기술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여성운동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창했다. 또 사적·공적영역을 막론하고 여성에 대한 왜곡

된 표현을 바로잡는 한편, 정치가 좀더 공정하고 투명할 수 있도록 견제세

력으로서 여성의 수가 대폭 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보통신기술 여성운동 강화 수단으로 젊은 세대 적극적 참여 유도도 숙

이와 함께 인터넷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과 아동 매매춘 문제의

심각성, 매춘여성의 인권 보호와 국가적 차원의 섹스산업 근절 노력을 기울

일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 가정폭력은 더 이상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동체

와 사회 문제이며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을 막기 위한 법률제정이

중요함과 입법과정에 피해여성이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장했다. 또한

성인지적 교육의 시스템화가 유아단계에 시작돼야 함은 물론, 모든 과정에

포함돼야 할 것, 이를 담당할 교사 양성의 시급함이 지적됐다. 또 여성주의

적 시각을 가진 예술작품이 보다 활발히 제작되고, 전통 문화유산이 보존돼

야 한다는 내용 등이 논의됐다.

이에 더해 각국 실행위원들은 구체적 행동계획으로 ▲동아시아 여성포럼

의 공식 웹사이트를 발전시키고 지역 트레이너를 훈련시킬 것 ▲무임금노동

과 같은 포럼에서 나온 특별의제에 관한 동아시아 여성 사이버 포럼을 만들

것 ▲여성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교류를 촉진할 것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입법화를 정부가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이를 감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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