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아줌마’를 보여달라

‘가부장적인 집안의 순종적인 전업주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던 MBC 월화드라마 <아줌마>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방영 초기에 비해 시청률은 회복했지만, 애초의 기획의도가 흐려지고 있는 것.

초반부 상식을 벗어난 시어머니와 올케의 이기적인 행동에 절대 순종하던 주인공 오삼숙(원미경)의 모습은 극적인 반전을 위한 행동이려니 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오삼숙의 처지에 분노하며 이후의 행보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15-3.jpg

중반부에 남편 장진구(강석우)와 이혼을 선언하며 갑자기 똑똑해지고 할말 다하는 오삼숙의 변화상이 그리 개연성 있는 것은 아니었어도, 가능성으로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혼 문제를 질질 끌면서, 양육권마저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오삼숙의 이야기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장진구와 한지원(심혜진)의 애정행각, 오빠 오일권(김병세)의 외도 등 자극적인 사건이 펼쳐지면서 더더욱 오삼숙의 이혼문제는 시청자의 관심권 밖으로 벗어나고 있다.

<아줌마>는 분명 참신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가령 12월 25일 방영분에서 오삼숙은 양육권 뿐 아니라 두 아들의 친권까지 갖고 ‘성’을 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현행법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호주제폐지운동을 하는 여성단체에 들러 호주제 위헌소송에 동참한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부모성을 함께 쓰는 것에 대해 물어보지만, 오삼숙 역시 감정적 차원의 발상이었을 뿐 부모성을 함께 쓰기의 원리며 의미는 잘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아이들이 거부감을 표시하자 논리적으로 설득시키지 못하고 성을 내며 돌아설 뿐이다.

문화방송 홈페이지 <아줌마> 게시판에도 올라있듯 이 드라마가 지적을 받는 것은 은연중 여성 캐릭터를 희화화시키며 여자들끼리의 싸움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대학교수씩이나 되는 한지원은 남들은 다 아는 장진구의 인격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아파트까지 팔아 위자료를 물겠다고 나선다. 많이 배웠어도 현실감각이 없는 ‘헛똑똑이’에 불과한 캐릭터다. 오일권의 아내 역시 교수 아내라는 자리를 고수하고자 남편의 외도를 질끈 눈감아 준다. 오일권의 제2의 여자는 인터넷 게시판에 오일권의 비양심적 행위를 폭로하며 ‘팜므 파탈’로 변신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원인 제공자인 남성 캐릭터들은 뒤로 한 발 물러선다. 그저 여자들끼리 참아야 하네, 사랑하네, 더는 못참겠네 하며 암투를 벌이며 남자들이 저질러 놓은 일을 뒷치닥거리하고 있다.

종영을 향해 달리고 있는 <아줌마>가 활로로 삼아야 할 것은 진정성 있는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길일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던 오삼숙이 자신의 삶을 찾겠다고 둥지를 박차고 나갔을 때 필요한 것은 또다른 남자의 도움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겪으며 생활력을 길러나가는 의지이다. 주변을 둘러 보라. 오삼숙 같은 아줌마가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인지, 한지원같은 캐릭터가 어디 그리 흔한지.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