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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원로작가는 유미리를 두고‘슬프고 마음 달랠 길 없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유미리의 현실은 늘 어렵고 지독했기 때문이다. 도박에 미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호텔을 돌아다니며 술시중을 드는 어머니 그리고 가난, 여기에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당하는 이지메와 성폭력은 그를 자살미수와 가출의 비극 속으로 밀어넣곤 했다. 늘 외톨이였던 유미리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읽는 재미로 잠시나마 불행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불행은 내 창조력의 원천’

하지만 이런 상처는 그가 작가로 성장하는 데 토양이 되었다. 그는 불행했던 과거와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현실과 영원히 어울릴 수 없다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의식이 깊이 깔려있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근원적인 소외와 일그러진 자화상 등은 그러한 의식을 대변한다. 또한 그것은 고통스런 과거와 함께 기존에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 당연하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곤 한다.

97년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품 <가족 시네마>에서도 그는 “가족이 진정 아름다운가”라고 묻는다. 그에게 가족이란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을 남기는 존재일 뿐이다.

“말은 나를 상처 입혀 피 흘리게 하는 것”이라는 그에게 섹스는 또 다른 의미의 가학이었다. “나는 섹스를 자신을 짓밟고 못살게 굴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0대 초반에 면도칼로 손목을 긋거나 시너를 마시던 자해의 충동이 섹스로 향해진 것 같다”라고 고백한 적 있는 그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몸이란 없었다. <타일>에 등장하는 발기불능으로 이혼당한 사내, <여학생의 친구>의 여고생 미나, <소년클럽>의 네 명의 초등학생에게 있어 몸은 성(性)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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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상처 입혀 나를 찾는다’

지난해 출간된 두 권의 책 <남자>와 <생명>에서 그는 변화를 보인다. 관계의 단절과 인간 내면의 악마적 성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소통에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그는 <남자>에서 “남자만이 여자의 몸을 원하는 일방적 에로스가 아니고 서로가 서로의 몸을 갈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에로스”를 통해 인간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남자의 몸을 부분 부분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관음증적 시선과는 다른, 아주 덤덤한 어조로 기술하는 것은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쓸쓸함이나 냉소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소설가 조경란은 “나는 <남자>에서 보았다. 사랑을 탄생시킬 수 있는 육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자>는 생명으로 가는 첫걸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던 당시 유미리는 한 유부남과의 사랑과 임신, 이후의 배신 그리고 10여년 동안 동지적 사랑을 나눴던 히가시 유타카의 말기 암 선고와 죽음 등으로 인한 절망과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한 여성으로서 부딪쳐 얻은 치열한 진실

<생명>은 그런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고뇌에 대한 기록이다. 스스로 미혼모의 길을 택했던 그의 “이 이야기를 씀으로써 살아갈 결의를 가다듬고 싶었다”는 고백은 듣는 이의 가슴을 아슴 아슴하게 한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에 대한 집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을 불행했던 과거를 치유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행복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일상의 1초 1초가 머리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만큼 삶의 의미가 달라졌다.

철이 들면서부터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는 유미리. “현실의 언어에 말뚝을 단단히 박고 그 한 자 한 단어에 매달려 있지 않으면 현실의 탁류에 휘말려들어 익사해 버릴 것 같았”던 그가 이제 비로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생명을 엮어 가는 것을 몸으로 배우며 홀로 선다.

>유미리 작품 연보

1993년 희곡 <가시를 상실한 기계>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발표

1993년 희곡 <물고기의 축제>

(기시다구니오 희곡상 수상)

1996년 소설 <풀하우스> (이즈미교카 문학상 수상)

1997년 소설 <가족 시네마> (아쿠타가와상 수상)

1998년 소설 <골드 러시> (40만 부의 베스트셀러)

2000년 소설 <남자>, <생명> 발표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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