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하는 남성이 ‘유니콘’ 시대

가계 걱정에 인사상의 불이익 우려도

‘육아는 엄마 몫’ 편견도 높은 벽

남성 의무 육아휴직제 도입 등 변화에 눈길

 

(왼쪽부터) 김호중(가명·36) 씨, 이상현(34·가명) 씨는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결심이 현실의 불이익으로 돌아올까봐 두렵다고 이들은 고백했다. ⓒ여성신문
(왼쪽부터) 김호중(가명·36) 씨, 이상현(34·가명) 씨는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결심이 현실의 불이익으로 돌아올까봐 두렵다고 이들은 고백했다. ⓒ여성신문

“네가 육아휴직을 해? 집사람은?” “회사 그만두려고?” “너넨 좀 여유가 있나보다. 우리 부부는 둘이서 죽도록 벌어야 먹고 사는데....” 자동차 기업 연구개발팀에서 일하는 이상현(34·가명) 씨의 육아휴직 선언에 동료들이 보인 반응이다. 오랫동안 고민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 씨의 아내는 프리랜서라서 육아휴직을 하고 나면 다시 일자리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빠를 유독 잘 따르는 애교 많은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는 아침마다 발걸음이 무겁다. 그러나 고민은 많다. “그간 쌓은 ‘성실맨’ 이미지는 포기해야겠죠.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어져도 별수 없고요. 그런데 인원 감축 얘기가 들려오니 걱정입니다. 저더러 영영 쉬라고 하면 어쩌죠? 저희 부서에선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한 사례가 없대요. 제가 너무 눈에 띌까 봐 부담이 돼요.”

세종시의 모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김호중(가명·36) 사무관도 요즘 고민이 많다. 석 달 뒤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면 자신이 이어서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는데, 조직 눈치를 살피고 있다. “공무원은 육아휴직이 수월할 것 같죠? 안 그래요. 보수적인 문화 탓에 여성 공무원들도 아직 눈치를 많이 봐요. 남자는 오죽하겠습니까. 회식 때 슬쩍 육아휴직 얘기를 흘렸더니 과장 표정이 안 좋더라고요. 다음날 회의 때 ‘요즘 공무원들은 자기가 민간 기업에 다니는 줄 안다. 우리 때는 주말에도 나와서 일했고 육아휴직은 생각도 못 했다. 어려운 시기에 더 책임감을 갖자’고 하더군요. 지인들끼리 ‘야, 공무원도 이런데 누가 마음 놓고 애를 낳겠냐’며 한탄했죠.” 

 

남성 육아휴직자를 ‘유니콘’이라고들 부른다. 그만큼 희귀하다는 의미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생긴 지 10년이 흘렀고 정부도 다양한 장려책을 펼쳤지만, 두 팔 걷어붙이고 육아에 뛰어드는 아빠들은 많지 않다.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은 여태 전체 육아휴직자의 10%를 밑돈다. 

2007년부터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사용자 수는 매년 늘었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남성 육아휴직자는 5398명으로, 2015년 같은 기간보다 53.2%포인트 늘었다.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6만7873명 중 남성 비율은 7.9%에 불과하다. 2015년 같은 기간보다 고작 2.3%포인트 늘었다.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에서조차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각각 3.5%, 8.75%에 그친다(2016년).

경제적 문제와 ‘사내눈치법’은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남성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산이다. “솔직히 애를 키우면서 맞벌이를 안 하면 먹고 살기 너무 힘들잖아요. 그런데 최대 100만원인 육아휴직 급여로 가계를 잘 꾸릴 수 있을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동료들의 업무 부담은 얼마나 늘지, 육아휴직 때문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닐지 걱정이 돼요.” 

“이런 고민을 나누고, 현실적인 조언을 구할 ‘아빠 동지’들이 없다”고 김 사무관은 말했다. “남자들이 많이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엔 육아휴직 관련 글이 없어요. 애들 기저귀 고르는 문제, 어린이집 신청 팁 같은 현실적인 육아 정보도 드물어요. 남자들이 관심이 없는 거죠. ‘남편도 육아에 참여해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아직 너무 부족해요. 이게 진짜 문제라고 봐요.”

 

스웨덴은 여성 출산 시 배우자 남성에게도 10일의 출산휴가를 보장한다. 남성들도 총 480일의 부모휴가 일수 중 최소 60일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부부가 부모휴가를 동등하게 나누어 사용할 경우 보너스로 최대 한 달 급여의 절반 정도를 제공한다. ⓒ주한스웨덴대사관제공, Martin Svalander/imagebank.sweden.se
스웨덴은 여성 출산 시 배우자 남성에게도 10일의 출산휴가를 보장한다. 남성들도 총 480일의 부모휴가 일수 중 최소 60일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부부가 부모휴가를 동등하게 나누어 사용할 경우 보너스로 최대 한 달 급여의 절반 정도를 제공한다. ⓒ주한스웨덴대사관제공, Martin Svalander/imagebank.sweden.se

전문가들은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주장한다. 남성 육아휴직을 법으로 강제하자는 것이다. 아빠들은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육아에 참여할 수 있고, ‘육아는 부모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에 이미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1995년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스웨덴은 여성만이 아니라 배우자 남성에게도 10일의 출산휴가를 보장한다. 남성들은 총 480일의 부모휴가 일수 중 최소 60일을 사용해야 하며, 부부가 부모휴가를 동등하게 나누어 사용할 경우 보너스로 최대 한 달 급여의 절반가량을 제공한다. 스웨덴의 합계출생률은 1978년 1.6명에서 2012년 1.91명으로 올라갔다. 노르웨이는 1993년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를 도입해, 전체 육아휴직 기간 중 일정 기간은 반드시 남성이 신청하게 했다. 2015년 노르웨이의 합계출생률은 1.73명으로 한국(1.24명)을 훨씬 웃돈다. 

한국에선 롯데그룹이 국내 기업 최초로 남성 의무 육아휴직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직원들이 아빠가 되면 한 달은 무조건 휴직하게 한다. 첫 달엔 통상임금을 100% 보전한다. 정부가 주는 육아휴직급여가 최대 월 100만원인데, 통상임금과의 차액을 회사가 지원하는 식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편과 아내가 교대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출산 후 2년 안에 이 제도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편견을 깨는 일이야말로 남성 육아휴직 확산의 열쇠라고 이 씨는 말했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는 ‘멋진 아빠’고, 자기 몸과 경력을 희생해 가면서 힘들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는 ‘그냥 엄마’로 평가받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남자들이 육아휴직 쓰려고 눈치 보는 사회, 육아휴직을 하는 남자들이 지나치게 칭찬받는 사회를 원치 않습니다. 그저 그게 평범하고 당연한 일인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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