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반대론등 시대에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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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계 낙태 전면금지 입법청원

사용자측 “유급 생리휴가 폐지하라”

유림측 “부계혈통은 영원히 계속돼야”

최근 국회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 여성노동자의 유급 생리휴가 폐지 법안이 발의되는가 하면, 종교계에 의해 낙태 전면금지 입법안이 청원되고, 3년전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민법의 개정안이 여전히 묵혀 있는 등 여성의 권익에 반하는 보수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같이 보수주의자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것은 급속한 여성권익 신장에 대한 반동과 함께 변화하는 국내외적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말한다.

특히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찬반 논의가 없었던 낙태에 대해 갑자기 완전금지 하는 법을 만들자는 주장까지 제기된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낙태 반대론자인 부시가 당선한 것에 편승한 것이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그동안 낙태를 반대해 왔던 가톨릭계가 이를 직접 행동으로 옮긴 것은 지난 12월 27일. “낙태를 일부 허용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청원서를 소개한 의원들이 43명이나 되고 가톨릭 신자인 여성의원 2명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낙태의 허용범위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 보장에 관한 헌법 제10조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형법 제269조 및 제270조 낙태죄의 규범적 효력을 잃게 함으로써 무분별한 낙태를 조장하고 생명경시풍조와 성윤리 문란 등의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 나라는 형법 제269조에서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70조에서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병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또는 산모의 건강을 해할 우려가 있을 때 낙태를 허용”하고 있어 낙태반대론자들은 이 법이 낙태의 합법적인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여성계는 낙태 반대론자들이 우려하는 무분별한 낙태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반박한다.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펴면서 낙태를 피임의 한 방법으로 조장한 면도 없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기반한 남아선호로 인해 오히려 성감별 낙태까지 초래했다는 것이다.

낙태 전면금지 - 강간등 원치않는 임신여성 외면

낙태 반대론에 대해 무엇보다 여성계가 비판하는 것은 “강간·준강간 등 원치 않는 임신이나 산모의 건강을 해하는 임신 등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낙태를 금지하자는 것은 여성들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를 완전 금지하더라도 이러한 긴급한 상황에서 낙태를 한다면 형법 제22조의 긴급피난 조항에 의해 처벌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회 여성특위의 박숙자 전문위원은 “형법 제22조의 긴급피난 조항은 산모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처할 때는 낙태가 가능하지만 강간 등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선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남아선호 사상을 불식시키고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가능해지고 나서야 낙태에 대한 규제 논의를 할 수 있지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최영애 소장은 “(청원자들이) 강간 등으로 인해 임신한 피해 여성들의 절박한 상황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최소한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낙태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까지 박탈하는 이번 입법 청원과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생리휴가 폐지 - 남녀고평법 실현 전제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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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들의 권익에 대해서도 보수주의 진영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민련의 김종호 총재대행은 “…모성보호 강화를 위한 관련법률 개정 등에 대해 국가경쟁력이 회복될 때까지 신중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골적으로 기업측 편을 드는 발언을 했다. 이에 여성노동법개정 연대회의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여 “가정과 직장을 양립할 수 있는 조치의 미비가 여성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성보호는 국가경쟁력과는 별개로 사회적 재생산 측면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정책”이라며 자민련의 무책임한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해 12월에는 생리휴가제 폐지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대표발의 정우택 의원)되었다.

이 법안은 유급 생리휴가가 비합리적인 여성 과보호 조항으로 오히려 여성고용을 위축시킨다며 이를 폐지할 것과 그 대신 12주 유급 산전산후휴가 비용의 전액을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할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성계는 이에 대해 고려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출산비용을 기업이 전액 부담하는 대신 생리휴가를 폐지하는 것은 여성노동자 측보다는 기업 측에 더 유리한 제안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노동자가 20년 근속 기간 중 한 달에 한 번 생리휴가를 낸다면 240일분의 비용이 드는 반면, 출산비용은 평균 2명의 자녀를 출산한다고 할 때 180일분의 비용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노동계는 현재 유급 생리휴가제가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수당지급을 통한 임금보전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여성의 평균 임금수준이 남성의 61.7%(98년 기준)로 여전히 성차별 노동시장의 고용관행이 만연되어 있고 남녀고용평등법이 완전실현되고 있지 않는 현실에서 생리휴가를 폐지하는 것은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부계혈통 고수 - 동성동본금혼 피해 여전

양성평등한 가족제도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최근 가정법원 등이 호주제 위헌소송을 위한 원고인들의 불복신청을 기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을 비롯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지 3년여가 지났음에도 동성동본금혼제를 포함한 민법이 여전히 개정되고 있지 않아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민법은 98년 한차례 개정안이 제출되었으나 15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될 때까지 국회에서 묻혀 있었다. 현재 16대 국회에서 정부안으로 다시 제출되었지만 유림들을 의식한 의원들이 이 법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여성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유림 측에서 소관상임위와 소속 의원실에 수시로 찾아가 “법안을 상정하는 것도 기분 나쁘다”는 의견을 전달하며 “상정하지 말아달라”는 로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민법의 관련조항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지만, 혼인신고를 접수받는 일선 창구에선 여전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 실랑이가 일어나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이 법안이 하루 속히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남인숙 사무총장은 “국회가 자칫 여성문제와 관련해 보수로 회귀한다면 이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라면서 “여성계가 반발하는 것은 물론 일반여성들도 이를 결코 묵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을 계기로 여성문제에 대한 논쟁이 공론화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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