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가 쓴 소설이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 독자들은 두 가지 궁금증을 품고 책을 펼치게 된다. 우선은 작가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가 궁금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그러한 인생을 살아온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로 그 궁금증이 옮겨갈 것이다.

이 ‘자전적 이야기’에는 함정이 있다. 독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 또는 주인공인 인물에 감정이입하며 그 인물에 아직껏 만난 적 없는 작가를 투영한다. 독자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작가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작가는 친구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작가에 의해 정교하게 취사선택된 허구라는 사실은 곧잘 간과된다.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 속 주인공, 마르그리트의 모델이 된 뒤마의 실제 연인 마리 뒤플레시. ⓒWikimedia Commons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 속 주인공, 마르그리트의 모델이 된 뒤마의 실제 연인 마리 뒤플레시. ⓒWikimedia Commons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는 이 무수한 ‘자전적 이야기’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다. 주인공 마르그리트는 파리 최고의 코르티잔으로 뭇남성들의 구애를 받으며 사교계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화려한 생활과 달리 남몰래 폐결핵을 앓으며 고독 속에서 지쳐가고 있는 그녀에게 가난한 귀족청년 아르망이 진실된 사랑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사랑의 기쁨도 잠시, 파리에 가 있는 아들이 코르티잔과 동거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아르망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아들 곁을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마르그리트가 떠난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르망은 그녀가 부유한 후원자를 찾아 떠난 것으로 오해하고 그녀에 대한 원망을 키운다. 그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마르그리트가 가난 속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뒤다. 아르망은 뒤늦은 사랑의 회한으로 눈물을 흘린다.

마르그리트의 모델이 된 뒤마의 실제 연인 마리 뒤플레시는 당대 최고의 코르티잔으로, 뒤마 외에도 한때 그녀와 연인 사이였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그녀가 죽은 뒤 조사(弔辭)를 남겼고, 문학평론가 쥘 자냉은 “고개 숙인 아름다운 얼굴과 꽃다발을 구분하기 위해선 청년의 눈과 어린아이의 상상력이 필요할 정도”라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코르티잔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당대의 불문율이었지만 뒤마와 헤어지고 나서 뒤플레시는 페레고 백작과 결혼해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백작 집안의 반대로 다시 파리로 돌아와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무 살 무렵 만나 1년여 동안 동거했던 뒤플레시와 뒤마가 결별한 원인은 뒤플레시의 사치벽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뒤마는 뒤플레시에게 이별을 고하며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해주고 싶은 만큼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부자도 아니고 당신이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에 만족하는 가난뱅이도 아닙니다.”

 

마리 뒤플레시가 극장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수채화. ⓒWikimedia Commons/Camille-Joseph-Etienne Roqueplan
마리 뒤플레시가 극장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수채화. ⓒWikimedia Commons/Camille-Joseph-Etienne Roqueplan

뒤마의 소설을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기엔 사실에 대한 왜곡이 많다. 소설 속에 실제 뒤플레시의 모습은 그녀가 코르티잔이었고, 뒤마가 그녀를 극장에서 처음 만났으며, 동백꽃을 좋아했다는 것과 폐결핵으로 죽었다는 사실 정도만 반영되어 있을 뿐 나머지 이야기는 뒤마가 펜으로 만들어낸 허구에 가깝다. 아르망과의 이별을 종용한 아버지의 존재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이기도 한 아버지 뒤마가 아닌 코르티잔과의 결혼을 반대한 페레고 백작의 아버지에게서 원형을 찾을 수 있으며, 그 외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요 장치들, 아르망의 장래를 위해 마르그리트가 연인의 오해와 원망도 불사하고 떠났다거나, 그녀가 아무도 찾는 사람 없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죽음에 이르렀다거나 하는 것들은 순전히 뒤마의 상상력에 의해 재창조된 이야기들이다.

자신이 연인을 물질적으로 만족시켜줄 만큼의 부자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이별을 선택한 남성이, 이별 후 죽은 연인을 모티브로 작품을 창작하며 연인을 자신의 천한 신분이 남자에게 누가 되리라 생각하며 곁을 떠나는 희생적인 모습으로, 자신과의 이별 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며 가난 속에서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가련한 모습으로 묘사했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연인이 자신과 헤어진 후에도 부유한 귀족의 구애와 함께 결혼생활을 하고 조의를 표하는 사교계 명사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혹시 부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그 마음이 열등감이거나 복수심은 아니었을까.

분명한 것은, 만약 뒤플레시가 펜을 들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썼다면 오늘날 우리가 책으로 읽거나 무대에서 보는 이야기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만났으리라는 사실이다. ‘자전적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들은 독자나 관객들이 그 속에서 남겨지고 지워진 이야기의 행간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윤단우 작가, 무용칼럼니스트.

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다.

무용월간지 <몸>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와이즈발레단 기획팀을 맡고 있다.

쓴 책으로는 발레에세이 『열아홉번의 사랑』, 『사랑을 읽다』,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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