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 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지난 10월 28일자 조간 신문에서 여성신문의 이계경 사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눈을 씻고 다시 읽었지만 사실이었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 확인하는 순간 여성신문에 계속 칼럼을 써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올해 십여 곳의 매체로부터 고정칼럼 청탁을 받았다. 바쁘다며 매달 한 번 쓰는 것도 거절했던 내가 여성신문에 매주 글을 쓰는 강행군을 택한 이유는 여성들과 대화를 하고 싶은 소망도 컸지만 이 전 사장과의 개인적인 관계도 한몫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전 사장을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다만 여성신문과 여성운동에 대한 이 전 사장의 헌신을 지켜보면서 늘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학기에 이 전 사장으로부터 개인적인 도움을 받았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자매애를 느끼며 큰 힘을 얻었다. 이 사장에게 보은할 방법을 찾고 있던 중 마침 글로 여성신문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에게 여성신문과 이계경 전 사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신문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땀과 노력을 너무도 잘 알기에 양자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신문은 엄연히 모든 여성의 것이고 국민주로 만들어졌다. 이 전 사장의 노고는 인정하되 떠난 사람과 연결해서 여성신문을 함부로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여성이 주인인 여성신문을 개인의 소유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이유는 시스템에 의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 한두 명에 의존해서 인물중심의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기업에서도 사장이 70%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할 정도로 결정적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보면 수백 년에 걸쳐 성공한 기업은 뛰어난 지도자에 의지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기업이 오래 살아 남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정당이라는 시스템보다는 대통령 후보 개인을 평가의 근거로 삼는 한 후진적인 정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즉, 대통령이 철인이 되기를 기대하는 국민은 절대로 그 기대에 걸맞는 정치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철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전 사장의 선택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여성신문을 떠나는 독자도 똑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여성신문은 이 전 사장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사장의 개인적 선택을 존중한다는 여성신문의 사고(社告)에 분노한 독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 잘 알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리 판단하지 않고 좀 더 지켜볼 생각이다.

어떤 이에게는 한나라당이 보수적이고 특권적이며 반여성적인 정당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는 어차피 우리나라 정당이 비슷하게 보수정당이므로 개인의 선택을 무조건 도덕적 잣대로 단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나 독재시대처럼 타도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곳에서 도덕적인 잣대를 성급하게 들이대는 것보다는 한 사람의 행동을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좀 더 여유를 갖고 기다리고 싶다. 최근에 읽은 책 <운명을 뛰어넘는 길>은 내게 복잡한 도덕적 판단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었다. 한 스님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고 질문했다.

“남에게 예의바르게 잘 대해주면 선이고 거칠고 나쁘게 대하면 악입니다”라고 어떤 사람이 답했다.

스님은 “나를 위한 일은 악이고 남을 위한 일은 선”이라고 답했다. 이 답변이 이해가 안 간다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관리에게 욕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 것을 너그럽게 용서했다. 몇 년 후 그 사람은 살인자로 체포돼 그 관리에게 다시 끌려왔다. 그 관리는 자신이 전에 그를 용서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후회했다. 그 관리는 과거에 그를 용서했던 것은 “선한 마음으로 악을 행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만일 그 때 내가 따끔하게 그에게 벌을 주었더라면 그가 살인까지는 하지 않았을텐데...”하며 후회를 했다. 벌을 주는 것은 비록 그에게 나쁜 일이 될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선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벌을 주는 관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선악판단이 달라진다. 스님의 정의에 따르면 그 사람이 미워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벌을 주면 악이 되고 그 사람과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벌을 주면 선이 되는 것이다. 즉,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는 근거는 그 동기가 어디에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 전 사장의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물론 이 전 사장의 그 동안의 행적을 볼 때 나쁜 동기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동기는 오직 결과로서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전 사장이 한나라당에서 또 하나의 예스맨으로 전락해 자신의 부귀와 권세를 탐한다면 변절자라고 비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자신의 몫을 다 한다면 그의 한나라당행 하나만을 가지고 비판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여자에게만 결벽을 강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해야 할 언론사의 사장으로서 정당행을 감행한 시기나 독자나 신문사 식구들의 동의를 구하는 방법에 있어서 문제가 많았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신문사는 주식보유문제를 포함해 향후 이 전 사장과 신문사의 관계를 투명하게 밝히고 여성신문이 철저히 국민신문으로 다시 태어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 발표결과에 따라 나도 칼럼을 계속 쓸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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