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생명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가장한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경기도 군포경찰서에 따르면 가해자 이모씨는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보험설계사 김모씨를 자신의 자취방으로 유인해 금품을 요구하다 김씨가 반항하자 흉기로 가슴을 찔러 살해한 뒤 신용카드 2장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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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성폭력·강도·살해위험에 무방비 노출, 보호막 절실해

회사 실적목표에 내몰려도 노동자 인정도 못받는 형편

모든 보험설계사들에게 김씨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폭력, 강도, 강간, 살인에 이르기까지 보험설계사들은 직종의 특성상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는  화재 보험설계사가 고객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현금을 갈취 당한 사건이 있었다.  생명 보험설계사  씨는 “고객을 모으기 위해 회사를 방문하면 남자들은 나를 앉혀놓고 ‘이쁘다’‘뭐 해줄까?’ 하면서 갖고 논다”면서 “기가 막힌 일이지만 목적량을 달성하려면 성추행을 당해도 참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전국보험모집인노조 이순녀 위원장은 “설계사들은 회사가 정한 업적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부당하고 위험한 환경도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달려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처지를 악용한 계획적인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수고용관계에 있는 보험설계사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해고될 수 있으며 업무 중 사고를 당해도 산재보험을 적용 받을 수도 없다.

골프 경기보조원과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들도 실질적인 종속관계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줄기차게 제기돼왔다. 그러나 정부와 법원은 ▲출·퇴근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없고 ▲근무장소에 대한 통제가 없으며 ▲회사의 지휘·감독없이 각자 재량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등을 들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고된 보험설계사 이항기씨는 “보험회사는 수당규정도 마음대로 정하고 있고 잔존 업적수당을 갈취하기 위해서 성과가 좋은 보험모집노동자들까지 계속 해고하고 계속 채용하고 있다”며 “설계사들을 보호해주는 법이 없기 때문에 보험회사만 꿩 먹고 알 먹고 있다”고 항의한다.

무엇보다 전국보험모집인노조는 보험설계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여성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보험회사 측으로부터 폭언과 폭력, 이유없는 해고를 당하고 고객남성들로부터 인격모독적 발언을 부지기수로 듣는 데다가 심지어 성폭력, 살해까지 당하는 것은 보험설계사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순녀 위원장은 “적어도 보험모집인들이 회사의 과다실적 요구에 시달리면서 성폭행 당하고 죽음까지 맞이해야 하는 모순은 개선해야 하지 않겠냐”며 “업적목표량과 유지율을 폐지하고 보험모집인 보호법률을 개정하는 등 최소한의 보호막은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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