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5년도에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당시에 여중에 다니던 친구들은 ‘남녀간의 로맨스’ 따위를 언급하며 부러워했지만 사실 학교에서는 등하교 때나 창문을 통해 아니면 운동장에서 남학생들을 언뜻 보는 것 외에는 남자아이들과 말하거나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리 학교는 소위 ‘무늬만 남녀공학’인 남녀분반 학교였던 것이다. 여학생반이 남학생반보다 훨씬 적었던 탓인지(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장가 걱정을 그때부터 했을지 모르겠다) 가정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은 항상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몸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또 선생님들은 남녀공학은 여중, 남중보다 ‘질서가 문란할 소지’가 다분하므로 복장 검사 하나에도 신경을 쓰셨다. 특히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웃기는’ 단속이 있었다.

우리 학교의 남자 교복은 명찰이 옷에 바느질로 고정돼 있었고 여자 교복의 경우 명찰을 떼고 다는 게 자유롭도록 옷핀이 달려 있었다.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에게 명찰을 학교 내에서는 달고 밖에서는 떼고 다니도록 했는데 그 이유가 참 ‘비논리적’이다. 즉 밖에서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자기 이름이나 내밀고 다니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면서 교문을 나설 때는 꼭 명찰이 보이지 않게 다니라고 했다. 나는 왜 여자는 ‘이름’을 드러내면 안 되는지 참 의문이었다. 자신에게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의 소중한 상징이 아닌가. 그런데 남자가 이름을 대놓고 다니는 것과 여자가 이름을 드러내는 것에 차이가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중3 때는 아주 희한한 복장검사를 했다. 바로‘거들’ 검사로 불시에 학생과 선생님들 몇 분이-물론 남 선생님들도- 교실에 들이닥쳐서 치마를 까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검사 이유는 거들을 입어야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치마 아래 팬티만 있으면 ‘벗겨먹기’ 쉬운데 거들은 몸에 밀착돼 있으니 벗기기 어려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소녀들한테 성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완전히 바꿔서 가르치는 꼴이 아닌가. 꼬시는 여자가 오히려 가해자고 잘못 휘말린 ‘동물적 본능’의 남자가 피해자라는 식의 논리 말이다. 이 검사에 여 선생님이 학생들의 거들 착용 유무를 검사해서 걸린 학생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 선생님이 종아리를 두꺼운 봉으로 피멍 줄이 그어질 정도로 때렸다. 우리들은 이때의 종아리 상태를 ‘떡볶이 됐다’라고 표현했다. 종아리는 한 번 멍이 들면 잘 없어지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맞아서 멍든 흔적이 오래 남아있으면 훈육 효과가 오래 간다고 생각한 듯하다.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거들을 입어서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한 경우가 거들을 입지 않은 경우보다 많은지. 그리고 한참 자라는 여중생들에게 갑갑하고 조이는 거들을 강요해도 되는지. (사실 나는 거들이 배를 조이는 게 너무 답답해서 잘 안 입고 다니다가 내내 떡볶이 상태로 중3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한참 민감한 여중생들에게 남자 선생님이 있는 곳에서 치마를 까보라고 하는 건 ‘성폭력’이 아닌지. 또 종아리의 피멍 자국으로 인해 더욱 남자들의 시선이 다리 쪽으로 쏠릴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여학생들에게 행동거지에 대해 설교하면서 ‘전근대적인’ 복장을 강요하기 전에 잘못된 성 의식을 갖고 있는 수많은 남자들부터 제대로 교육시키라고.

박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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