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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애인을 뒷바라지 했건만 결국 애인이 다른 여성과 결혼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많았다. 사진은 드라마 <청춘의 덫>의 한 장면.

상대만 있고, 내가 없는 사랑을 ‘피그말리온식 사랑’이라고 한다.

고대 희랍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사람여성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석고상을 사랑해, 보상(?)없는 사랑을 하는 그를 불쌍히 여긴 여신이 석고상을 사람으로 변하게 해 피그말리온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신화의 끝은 해피엔딩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보상받기가 어렵다. 아주 불행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할까?

누군가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지만 이것은 역설일 뿐이고, 그래도 우리 보통 사람들은 가까이에서 만지고 쓰다듬고 안을 수 있는,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보이는 사랑을 해야 불행하지 않다. 아무리 불행한 경험을 극복하는 것이 그 사람의 영혼을 성숙하게 한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면 ‘상대만 있고 나는 없는’ 피그말리온식 사랑에 목을 매고 불행해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내 애인은 파란색을 좋아해. 그래서 나는 파란색만 입어’ 라거나 ‘우리 남편은 고기 요리는 먹지 않아요, 생선요리만 좋아하지요. 그래서 나는 생선요리만을 주로 합니다. 나요? 나는 고기요리를 좋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닌가요?’혹은 ‘나는 성관계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이가 너무나 원하니까 거절하기가 어려웠어요.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만나기만 하면 여관에 가지요. 하지만 아직도 내가 정말 원하는가에 대해 확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없는 사랑을 하다보면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없어지는 아픈 경험을 하기 일쑤이다.

‘내가 널 어떻게 대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어?’‘나보다 그를 더 사랑했는데 그는 나를 떠나 버렸어요. 나는 더 살 희망이 없어요’라든가 ‘나는 그 사람을 나보다 귀하게 생각하고 대했는데, 그에겐 내가 너무나 가벼운 존재였어’라고 불행한 푸념을 하며 눈물짓기도 한다.

그런데 잔인한 말이지만 그런 불행한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다.

나를 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대접하지 않는 사람을 누구도 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처음에는 그를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지만, 그의 끝없는 친절에 익숙해질수록 그의 존재가 쉬워지고 가벼워진다.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는 바로 나이다. 그런 내가 하는 사랑이기에 더 소중하고 현명해야 하며 그에게 내가 존중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지만, 한때 인기가 많던 드라마나 소설에는 유학생인 애인을 공부시키기 위해 자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돈을 벌어 뒷바라지를 했건만 결국엔 애인이 다른 여성과 결혼하는 내용이 많았다.

70년대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얼마 전 다시 각색하여 방영해 인기를 얻었던 <청춘의 덫>인가 하는 드라마도 그런 내용이었는데, 시대가 바뀌어서도 피그말리온식 사랑을 그린 이야기가 공감을 얻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을 모았다는 것을 보아도 그런 사례가 지금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결혼한 사람끼리도 이런 아픈 상황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어려운 우리 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이미 희생한 아내가 모든 것을 잃고도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뒷이야기로 남아 현대판 열녀로 동정을 모으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면 그럴 수 있다고 딱하게 생각하고 동정하든지 가십성 이야기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되어선 곤란하다.

분명히 내가 있고 상대도 있는 그런 사랑을 하자.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상대에게 알리고,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도록 하면 더 행복하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내가 원하는 사랑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으면 더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태어나면서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배워 가는 것이다.

또 사랑이 일방적이면 행복하기 어렵다. 그런 사랑은 오래 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억울함으로 보상을 요구하게 한다.

칼릴지브란은 이렇게 노래했다.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사람의 잔만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 빵을 나누어주되 한사람의 것만 먹지 말라.”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사랑을 나누고 또 채워주되, 한사람의 것만을 취하지 말라.

인터넷 경향신문 미디어칸 성문화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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