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차 WIN문화포럼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강연
‘러시아 문학과 노벨 문학상’

20일 서울 신사동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4차 WIN 문화포럼에서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러시아 문학과 노벨 문학상’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2월 20일 서울 신사동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4차 WIN 문화포럼에서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러시아 문학과 노벨 문학상’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계 최고가 돼야 하는 게 아니라 세계 속에서 우리 자리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게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12월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4차 윈(WIN) 문화포럼’에서 ‘러시아 문학과 노벨 문학상’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문학자인 김 교수는 1984년 미국 휘턴 대학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예일대에서 슬라브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연세대에서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 교수는 노벨 문학상의 역사와  관련 에피소드를 전하며 특강의 문을 열었다. 그는 “장 폴 사르트르는 자신의 이름이 소개될 때 앞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고 붙는 게 싫어서 수상을 거부했다. 반면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노벨 문학상 수상을 못했다. 지난해 수상자인 밥 딜런이라는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예기치 못한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벨 문학상이 상으로서 지닌 한계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상을 받을만한 문학은 분명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문학이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 회고록, 정신 분석학 등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어서 상을 주는데 앞으로 고민하게 될 거다. 또 무슨 근거로 (상을) 심판하느냐에 100% 동의 안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분명히 큰 상을 받을 만한 문학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들에게 힘이 있다. 김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영광”이라고 했다.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스럽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노벨 수상자 탄생도 중요하지만 한국 문학의 현주소부터 인식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 보여주는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한 집착에 대해서는 “어떤 이는 중국, 일본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한국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콘퍼런스에서는 한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올해도 전략에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창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정말 큰 작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섣불리 노벨 문학상을 타면 안 될 것 같다. 누군가 한 번 타면 앞으로 몇십 년간 못 탈 수도 있다. 또 수상할만한 작품이 우리에게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세계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 세계 속에서 우리 자리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게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김 교수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5명의 러시아 문학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강연을 이어나갔다. 김 교수가 소개한 작가는 이반 부닌(1933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년), 미하일 숄로호프(1965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70년), 요세프 브로드스키(1987년)다.

김 교수는 이반 부닌의 소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를 소개하며 “자본주의 속물을 고발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주인공이 크루즈 아틀란티스호를 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크루즈에 탄 유럽 상류층을 보며 딸의 혼인에 대해 상상해보고 이후 도착한 섬에서 무도회에 가기 위해 넥타이를 매다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대해서는 “20세기 초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러시아 사회에서 시작해 스탈린의 시대가 오고 혁명 끝에 와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바라보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미하일 숄로호프가 1965년 ‘고요한 돈강’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 사람의 진짜 작품인지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이걸 쓰고 변변한 작품을 쓴 게 없기 때문이다. 12년이라는 기간 동안 굴러다니던 원고를 가져가서 발표했다는 설 등이 있다”고 말했다.

20일 서울 신사동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4차 WIN 문화포럼에서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러시아 문학과 노벨 문학상’ 특강을 하고 있다.
20일 서울 신사동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4차 WIN 문화포럼에서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러시아 문학과 노벨 문학상’ 특강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 대해서는 “그는 ‘위대한 작가를 가졌다는 건 제2의 정부를 가진다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러시아에서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나 사회적인 믿음의 힘이 컸다”고 소개했다. 요세프 브로드스키에 대해서는 “이 분이 초등학생 때 교실 벽에 걸린 스탈린의 축사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뛰쳐나간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브로드스키는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 반 소비에트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적 있다. 재판관이 “누가 당신을 신인이라고 하나”라고 하자 브로드스키는 재판관을 향해 “누가 당신을 인간이라고 했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윈문화포럼은 여성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으로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며, 격월로 명사를 초청해 포럼을 열고 있다. 서은경 윈문화포럼 상임대표의 인사말로 문을 연 이날 포럼은 심혜숙 회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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