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요? 그냥 함께 노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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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례(원내)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백혈병을 앓았던 광윤이(사진 왼쪽)를 찾아가 공부를 가르친다.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울 때가 더 많긴 하지만, 그 시간이 광윤이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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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늘어지게 잘 시간인 매주 일요일 아침. 육정례(20)씨의 발걸음은 잠실에 있는 ‘아산병원’으로 향한다.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걸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사)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이하 소아암협회)가 운영하는 ‘생명사랑수호천사봉사단’에서 활동 중인 정례씨는 ‘병원봉사팀’ 일원으로 일요일마다 아산병원에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찾아간다.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다가 우연히 생명사랑수호천사봉사단을 발견했죠.” 정례씨가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 소아암협회 홈페이지에 자원봉사를 신청한 후 간 곳이 아산병원이었고 지금도 이곳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그가 돌봐주는 아이들은 4∼6세 사이의 백혈병 환자들이다.

“아이들을 세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손 씻고, 양말 신고, 앞치마까지 입고는 병원에 있는 놀이방으로 들어가요. 별다른 건 없어요.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함께 놀고, 그게 다죠.”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들은 사람들과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완치가 어려운 병이기에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병원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이 나은 뒤에도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우리들과 만나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어요. 그게 바로 병원봉사팀이 하는 역할이죠. 더도 말고 병원에 딱 한번만 가보세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나면 일요일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아이들을 보는 기쁨이 너무 크거든요.”

병원봉사팀에 합류하고픈 사람은 소아암협회 홈페이지(www.soaam.or.kr)나 다음카페 해바라기의 꿈cafe.daum.net/knotman)에 가입하면 된다. 병원봉사팀은 대부분 대학생·직장인들로 이들은 평일에도 자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좋은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즐거워요. 번개 모임은 물론이고 엠티도 가면서 서로 친해질 기회가 많죠.” 정례씨는 까페 자랑에 신이 난다.

정례씨가 하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릴 때 백혈병을 앓았던 광윤이와 일대일 과외도 하고 있다. ‘1:1 학습지도 교육봉사팀’이라고 말하는 이 활동은 백혈병을 앓고난 뒤 어느 정도 치료된 아이를 찾아가 일주일에 한 번 공부를 지도해주는 것이다. “광윤이는 올해 고1이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5년간 병원에만 있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게 벅차요. 특히 수학·영어를 힘들어하죠. 그렇다고 공부만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이 학교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터놓고 친구가 되는 것도 중요하죠.”

‘과외’라는 말 때문에 혹시 돈을 받는 것은 아닌지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한 번 백혈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엄청나요. 특히 4∼5년 이상 이 병과 싸우고 난 뒤에는 잘 살던 집이라도 어려워지기 마련이죠. 따로 과외를 시킬 여력이 없어요. 당연히 무료 봉사죠.” 아플 때 못지 않게 아프고 난 뒤에도 그들에게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정례씨의 안타까운 목소리다.

한 가정에 백혈병 환자가 생기면 그 가정은 이산가족이 된다. 엄마는 아이와 병실에서, 아빠는 치료비 마련을 위해 생활전선으로, 형제는 친척집 등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뿐만 아니라 치료비 마련 등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도 많다. 일대일 과외에 관심은 있지만 당장 시작하기가 어렵다면 정례씨가 운영하는 까페 ‘수호천사봉사단(cafe.daum.net/soaam1)’의 문을 두드려보자. 까페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까지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병원과 광윤이의 집을 오가는 정례씨. 힘들 법도 하다. 특히 지난 해는 대학교에 갓 들어간 신입생이었으니 주말에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행복하니까요.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우면 이 일은 하기 어려워요.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비슷할 거에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만족을 위해서 한다는 거요.” 이런 그의 모습이 좋아 보였을까.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정례씨의 동생도 아산병원 봉사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국을 떠나지 않는 한 이 일은 계속 할 거에요. 아이들을 만나지 않는 내 모습이 이젠 상상이 되지 않아요.”

조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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