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jpg

최근 개그우먼 이모씨에 대한 남편의 폭행사건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그것도 아내를 때렸다는 데서 그 충격은 더 큰 것처럼 보인다.

스포츠 신문에 커다랗게 실린 그녀의 모습- 눈을 힘주어 감고 있는 그 표정-을 본다는 것이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황망스러웠다. 그녀는 그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얼마나 치욕스러웠을 것인가. 사람으로서 모든 자존심이 포기되는 듯한 그 모습이 정말 가슴아파왔다. 그러면서도 때린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더 부끄러워 하는 우리의 현실이, 뭔가 맞을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탐색하는 듯한 그 눈초리들이 정말 징그러웠다. 게다가 신문들의 제목은 ‘남자가 있다?’였으니.

남자가 있으면 맞아 죽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녀의 기사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만약 그녀가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때린 것이 야구방망이가 아니고 손이나 아이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면? 맞은 것이 그녀가 아니고 남편이었다면?

그녀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어디서나 가정폭력과 이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대화에 등장한다. ‘그녀가 유명인이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이혼이 거론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그러면서 참 놀란 것은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가정폭력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다는 것이었다. 많이 배웠든 아니든 가정에서의 폭력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때리는 이유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너무나 단순한 것에서부터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대던 뿌리깊은 부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했지만 어떤 문제도 때리고 맞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잠시 잠재울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속의 고름을 제거하지 않은채 그저 덮어버린 환부는 썩게 되어 있다.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할 자신이 없는(혹은 의사가 없는) 남편이 아내를 힘으로 제압함으로서 그저 문제를 잠재울 뿐이지 문제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다.

한번 남편에게 맞아본 아내는 남편에게 사람으로서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 예전의 그 동반자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우군이고 우선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할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다는 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절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한 중년여성은 자신 역시 몇 년 전에 남편에게 주먹으로 맞은 일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그 이후로는 어떤 육체적인 폭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용서가 안될 뿐 아니라 남편이 어떤 일로 화를 내고 뭔가를 던지고 할 때마다 힘이 빠지는 공황상태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가 예전에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왜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하는지. 결혼 전부터 부딪쳐 왔던 사소한 문제가 결혼 후에 해결이 되기보단 더 앙금이 깊어진 것 같아요. 그가 그렇게 소리지르고 화를 내면 나도 모르게 나를 방어할 뭔가를 찾아 쥐게 됩니다. 좀 정신을 차린 후에 내 손에 쥐고 있는 그것이 나를 방어할 수 없는 고작 페인트 붓이라는 걸 발견하고 황당할 때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절대로 맞고 싶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너무 두렵고 비참해서요.”

그럼에도 왜 헤어지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식에 대한 책임과 경제력이 없어서이다.

부모가 이혼한 결손가정(사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한 결손이 어디 있겠는가?)과 이혼녀에 대해 지나치게 왜곡된 사회의 시선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는 한 이혼을 결심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또 경제력이 없는 경우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주었던 생활의 안정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언어폭력이든 힘의 폭력이든 폭력을 자주 경험하는 여성은 자존감이 지극히 낮아진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 계속되는 비하감에 괴로워 하게 된다. 그러면서 폭력에 어떤 식으로든 대항할 생각을 못하게 된다. 심지어 폭력의 간격이 길어지면 불안해서 스스로 폭력의 동기를 만들어 맞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해 한다. 당분간은 잠잠할 것이기 때문에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 때리는 남편으로서도 폭력은 습관이 된다. 폭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 약자의 대항을 제일 손쉽게 제압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전처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단 손쉬운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들이 폭력을 쉽게 생각하는 이유를 나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남자들에게 너무 폭력적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라는 이유로 맞고 혹독한 기합을 받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체기합이나 체벌을 받게 되는 일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많아지고 그 정도가 심해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군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남자들은 폭력이야말로 불평이나 문제를 잠재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걸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폭력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폭력의 고리는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폭력을 근본적으로 끊을 수 있는 대안은 사람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인간관계의 가장 소중한 덕목은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심과 자비심이 아니겠는가?

배정원/인터넷 경향신문 미디어칸 성문화센터 소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