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3·8 여성의 날 계보 잇기
[여성논단] 3·8 여성의 날 계보 잇기
  • 김양지영 여성학자
  • 승인 2019.03.07 15:03
  • 수정 2021-01-0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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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 노동자들 참정권·
생존권 요구에서 출발
한국은 사회적 인정 받기
위한 여성의 성원권 운동으로
김양지영 여성학자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3·8 세계여성의 날의 기원과 정의는 다음과 같다. “1908년 미국의 1만5000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뉴욕 럿거스 광장에 모여 10시간 노동제와 작업환경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 물론 ‘1908년’, ‘럿거스 광장’ 등 여성의 날과 관련한 사실의 진위 여부 및 기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다만 확실한 건 미국의 여성 의류산업 노동자들이 해당 시기에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권리의 확보와 함께 생존권 투쟁을 활발하게 했다는 점이다.

3·8 세계여성의 날과 관련해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의 간절함과 함께 이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간절함을 같이 떠올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3·8이 한국에서 어떠한 역사성을 가져왔는지를 아는 것은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나로부터 시작해 ‘부모-조부모’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밟아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계보는 연결성이 보이지 않고 흐릿하지만 후대에 발굴하고 이으며 만들어지기도 한다. 현재의 3·8과 110여년 역사 속의 3·8의 연결고리들을 찾아 줄긋기를 하는 것, 바로 3·8 계보의 형성 과정이다.

우리나라에서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로 ‘국제부인데이’ 또는 ‘국제무산부인데이’로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좌우대립이 강했던 시기에도 3·8 국제부인데이는 좌우가 공유했던 최소한의 상징이었다. 미군정기인 1946~1947년에 좌우 여성단체들은 3·8주간(3월 1~8일)을 정하고 합동으로 전국 행사를 치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당시 좌우 여성단체들은 공사창제 폐지를 요구해 1948년 공사창제 폐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분단국가 현실 속에서 반공이데올로기에 질식되어 3·8 세계여성의 날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지난 2016년 3월 5일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2회 한국여성대회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종각역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 2016년 3월 5일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2회 한국여성대회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종각역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성신문

그러던 것이 1985년 제1회 한국여성대회 때 3·8 세계여성의 날로 부활했다. 당시 여성의 날의 부활은 해방 이후 사라진 진보적 여성운동의 뿌리찾기와 함께 일제강점기때 근우회처럼 폭넓은 여성연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바램 속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1985년은 ‘25세 조기정년 철폐 투쟁’ 등 여성노동자 생존권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들의 연대활동도 활발했던 시기이다. 3·8의 기원인 미국 의류산업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3·8 여성의 날을 부활시킨 1985년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24년 동안 3월 8일을 전후해 기념식, 축제, 거리행진, 여성문화제 등이 어우러진 한국여성대회가 이어져오고 있다.

여성노동자란 존재는 사적 영역에만 속해 있던 여성들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을 의미한다. 그러나 11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들에게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참정권이 없던 시대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은 정치적 권한과 밀접했고 110여년 전 여성들은 생존권과 참정권을 함께 외쳤다. 2019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미투(#MeToo)를 이야기한 맥락은 형식적인 참정권은 있으나 성원권이 없음을 보여준다. 성원권은 사회적 인정의 문제로, 그 사람이 사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여전히 여성은 사적 존재이며 공적 영역에서는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성적 대상인 몸으로 존재한다. 바로 사회에는 여성의 자리가 없다. 미투가 확산되자 남성 직장인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펜스룰은 여성의 성원권을 유보하는 전형이다. 여성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대하기 어려운 남성들이 여성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을 배우기보다 관계를 차단하겠다고 한다.

따라서 미투가 극단으로 읽히는 한국 현실에서 2019년 3·8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생존권과 참정권에서 시작한 운동이 몸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관계 맺고자 하는 여성들의 성원권 운동임을 널리 알리는 시간이어야 한다.

참고자

·신상숙(2010), “‘루트거스 광장’을 넘어서-3.8 세계여성의 날의 복합적 기원과 한국의 수용 맥락”, 『페미니즘 연구』, 10(1)

·김현경(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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