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민들의 화두는 단연 ‘로또’다.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되는 꿈은 ‘꿈’만으로도 행복하다. 로또는 하나의 투기다. 스릴과 흥미 때문에 사람들은 투기에 집착한다. 로또의 원조는? 고스톱이다. 이런 투기놀이와 함께 우리 사회를 휩쓴 또 하나는 ‘방’ 문화. 노래방, 비디오방에서 찜질방까지. 20세기말과 21세기초를 완전히 장악한 현상. 우리 여가 50년사를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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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2003년까지 여가문화 변천사

‘여가’를 단지 노는 것으로 생각하고 ‘놀이’는 일에 비해 부도덕한 것이라는 관념을 버린지 이미 오래. 하지만 막상 다양한 여가문화를 즐기고 있는가 물어봤을 때 ‘네’라고 말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여가는 곧 삶의 질을 나타내는 리트머스다. 내 삶의 질을 한층 높이기 위해 다양한 여가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의 여가 변천사를 살펴보는 것도 즐거운 재미거리일 게다.

1950년대- 한강으로 물놀이 가자!

1950년 한국전쟁은 자연과 문화유산의 전국적인 손실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을 파경에 이르게 했다. 전쟁직후 서민들에게 여가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말 그대로 먹고사는 자체가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 후 미군주둔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는데 암달러상, 미제 초콜릿 같은 소품은 물론 미국문화가 들어오는 계기가 됐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던 50년대 서울에서의 가장 큰 여가활동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창경원(현재의 창경궁) 나들이. ‘삐까번쩍’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과 우아한 한복이나 모처럼 마련한 양장에 양산을 든 여성들의 정답고도 어색한 표정이 누런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는 집이 대부분일 것이다.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기 위한 한강의 뚝섬, 광나루 모래사장의 물놀이도 귀한 때였다.

1955년 〈춘향전〉을 위시로 한국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극장에 처음 지정 좌석제가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고, 사상계(53년), 현대문학(55년) 등 많은 잡지가 창간돼 독서거리로 잡지가 큰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60년대- 만물상자 텔레비전 인기 짱!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여가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생겨나게 됐다. 급격한 도시 인구의 팽창과 도시권의 확대, 서울의 남산촵도봉산촵관악산 등의 개발로 도시 밖의 야외 여가활동에 흥미를 갖게 됐다. 60년대 후반에는 철도와 국도의 교통연계가 쉬운 서해안으로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천, 만리포, 몽산포 해수욕장의 개발이 이뤄지기도 했다. 커피와 팝송 등 외래 문화를 즐기는 것이 일상화돼 음악다방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60년대의 여가문화로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TV. 61년은 KBS TV가 개국된 해로 사람들에게 TV는 신기한 구경거리이자 특별한 오락활동이었다. 당시 TV는 최고의 사치품으로 마을에 한 대 밖에 없어 온 동네 주민들이 모여 함께 울고 웃기도 했다. 오죽하면 TV가 있는 집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뇌물(?)을 주며 맨 앞자리 다툼까지 했을까.

이 TV를 통해 한국 최초로 세계타이틀을 차지한 김기수 선수의 통쾌한 경기장면(66년)을 본 많은 사람들은 권투를 즐기게 됐다. 다양한 묘기들이 속출하는 짜고 치는 프로레슬링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1970년대 - 온천 인기, 단체여행 붐

70년대는 여가의식과 여가활동이 본격적으로 정착된 시기였다. 이제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생활의 질을 추구하게 됐고, 소득향상과 국토개발을 통한 도로교통망의 확충은 도시민의 야외 향락 기회를 더욱 증가시켰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었고, 1975년에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서해안으로 집중되던 여가행렬이 동해안의 여러 해수욕장으로 옮겨가게 됐다. 이로 인해 강릉시가 중심이 되는 동해안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해 전국적인 관광유원지 시대가 열렸다.

한편 70년대에는 집단 문화를 선호해 온천, 유원지 등의 단체여행과 주말여행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1980년대 - 자가용 타고 바캉스, 해외여행 자유화

80년대는 석유파동과 국내정치의 불안 등으로 한때 우리의 여가활동이 위축되는 듯 했지만, 이후 다시 가속화된 경제성장은 국민의 관심을 여가 생활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80년대 들어 여가문화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자가용의 보급. 자가용의 대중화는 사람들의 ‘옥외 여가활동’을 증대시켰고, 여름철에만 집중되던 여가활동도 사계절 여가활동으로 변모해갔다. 스키와 같은 겨울철 레저가 점차 확산됐고, 사람들은 겨울에 설악산, 오대산을 찾는 등 겨울철 여가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해외 여행자유화 조치(82년)로 한국인의 여가 공간이 국내에서 세계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 노래방, 방방 마다 인산인해

단군이래 최대의 히트 상품 노래방이 부산에 상륙(91년)하며 노래방은 곧 전국적으로 확산돼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여가를 즐겼다. 90년대는 외식도 여가생활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외식하면 특별한 날의 자장면을 떠올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외식형태는 그 규모와 다양성의 측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한 셈이다.

90년대 들어 해외신혼여행과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이 붐을 이루면서 그 규모가 점점 커져갔고 가족 중심의 테마여행, 문화답사 기행 등이 유행하기도.

2000년대 - 애완동물도 여가문화의 일원?

해외여행, 배낭여행은 기본. 이제 떠나는 게 오히려 귀찮은 현실이다. 움직이기 보다 호텔패키지 등에서 편한 휴식을 즐긴다. 즉석식품 등장으로 쌀과 부식 등의 나들이용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휴가지로 출발하는 광경은 이제 과거 속으로나 묻힐 일. 이젠 택배로 휴가지에 짐부터 옮겨놓는 시대다.

이것저것도 싫으면 가족끼리 인터넷 게임방에서 휴가를 즐기기도 한다. 휴가중 애완동물을 맡기기 위한 호텔급 동물병원과 놀이방은 물론 애완동물과 함께 하는 휴가지까지 등장했다.

동김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여성신문사와 한국여가문화학회가 주최하는 〈2003 가족여가페어〉에서는 가족여가문화상을 모집한다. 가족여가문화상은 생산적이며 바람직한 가족여가의 모습을 실천하는 가족, 단체 및 미디어컨텐츠를 선정해 건강한 가족여가의 모델을 제시할 예정이다. 시상분야는 가족여가 가족상, 단체상, 미디어상이며 심사기준은 유익성, 오락성, 실현의 보편성, 공익성, 가족친화력 등이다. 가족여가문화상 심사위원단은 여가문화학회 이어령 상임고문 등 각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시상은 6월 12일(가족여가페어 첫날) 코엑스 전시장에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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