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우리 경제는 지금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소비, 생산, 투자가 54개월 만에 처음으로 함께 감소했는데, 복잡한 수치를 들 것 없이 시장에 가보면 손님이 거의 없고 백화점이나 할인점도 매상이 대폭 줄어들었다. 전통적으로 불황을 모른다던 강남의 명품점들까지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장의 기계도 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열대 중 세대꼴로 쉬고 있으며 거리의 택시도 줄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는 기업들도 있다.

불경기에 대처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다. 그래서 위스키를 마시던 사람 중 일부는 소주를 마시기도 하고, 외식비용을 아끼고 라면을 사다가 끓여 먹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돈이 많이 드는 새 옷 대신에 넥타이나 브래지어 같은 품목을 사는 정도로 만족하고자 하는 소비습관도 나타났다.

기업들의 불황 타개를 위한 마케팅 방법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모든 상품을 단돈 1000원에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 생겨나고 백화점은 영업시간을 연장했다. 한편으로는 경비절감을 위해 인원을 축소하거나 신규인력채용을 줄이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나온 청년들이 취직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우리에게 큰 관심사는 이와 같은 불황이 왜 왔는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언제 끝날 것인지 하는 것이다. 최근의 불황은 대외적인 요인과 국내적인 요인이 겹쳐 일어났다. 미국이 재작년 이래로 경기침체를 겪어왔으며 유럽도 경기가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거기에다가 금년 들어 이라크 전쟁, 사스 등 악재가 함께 불거졌다. 국내적으로는 북한 핵 등 안보문제도 있지만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연이은 파업으로 인한 불안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앞으로의 경기 회복시점에 대해 한국은행 총재는 지금에 비해 하반기 경제가 나아지고 내년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바닥이라는 얘기다. 다른 전문가들도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회복될 것인가이다. 우리의 이웃나라인 일본은 90년대 초부터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데 10년 이상이나 불황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칫 잘못하면 일본이 겪은 장기불황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폴 크루그만은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불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자원을 동원해 탈출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불황타개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세금감면 조치를 시행했으며 미 연방은행은 금리를 1%까지 인하했다.

우리 정책당국도 불황 타개를 위한 금융과 재정의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5월에 금리를 인하했으며 필요하면 더 내릴 준비도 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정부지출을 4조원 이상 늘릴 계획으로 있으며,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미국의 주가가 올랐으며 소비심리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주가도 연초보다 많아 올랐다. 이러한 움직임이 침체된 실물경기의 회복으로 이어질 지는 아직 불투명하며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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