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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그린 연극 <날 보러와요>.

연극 <날 보러와요>가 8월 3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연장 공연을 하고 있다. 17년 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날 보러 오라’고 한 것은 그 범인에게 하는 말인 듯 하다. 과연 이 연극이 얼마나 사건을 잘 이해했으며 용의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을지 궁금한 나머지 직접 연극을 보았다.

이 연극을 이미 본 사람이라면 범인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텐데, 극장 문을 열고 나서는 모든 이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범인을 이해하는가?” 덧붙이자면 정말 나는 범인을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범인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언젠가 범인이 죽는 날이 와도 평생 범인을 무서워하며 살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범인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다만 어린 시절 받았던 충격으로 조금 우울함을 즐길 뿐이다. 물론 연극과 영화를 보고 나서 갖게 된 생각이지만. 연극이 시작했다. 음산한 분위기와 빗소리, 그리고 적막을 찢는 끔찍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기분 나쁘게 공연장 안을 가득 채웠다.

범인이 처음 여자를 죽였을 때의 마음을 잘 나타낸 것 같았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분명 화성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날과 상황이 비슷했을 것이다.

음산한 분위기와 소름 돋는 음향·조명이 극장 안을 가득 메웠지만 똑똑하고 차가워 보이는 김형사가 다방 미스 김과 연애하는 장면에서는 따뜻함과 웃음이 묻어 났다.

연극은 대부분 경찰서 안에서 이루어졌다. 연극은 영화보다 더 역동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 <날 보러와요>는 경찰서와 다방, 그리고 벤치 하나로 공간이동을 하기 때문에 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자 중 1인 3역을 한 사람이 있다. 작가이자 연출자인 감광림씨. 의도라고 하는데, 보이는 용의자 3명과 ‘상상 속의 범인’까지 친다면 1인 4역을 한 연기자가 소화해낸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성격의 네 가지 역을 소화하는 연극적 재미를 주면서 범인의 실재성을 현저히 약화시킴으로써 형사들이 끝끝내 범인을 못 잡을 거라고 시사하는, 재미있는 극적 발상이다. 정말 박수를 연거푸 쳐주고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그 당시 용의자들보다 훨씬 더 용의자 같았을 정도로. 지루할 틈이 없는 2시간이었다. 다만 한정된 공간과 정해진 시간에 그 많은 얘기를 해야한다는 게 아쉬웠다. 사건은 너무 빠르게 진행됐고,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돌아서인지 절정에 다다랐을 때 감정이 최고점으로 오르기보다는 계속 상기된 상태에 머물렀다. 연극이 끝날 무렵 극장 안은 숨소리마저 가라앉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비슷한 점이 바로 이 끈적끈적한 느낌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우리 모두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끔 무대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담배연기가 극장 안에 씁쓸하게 퍼지면서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갔다.

결국 모두 범인을 잡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열심히 잡기 위해 찾아 헤맸는데….

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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