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이미경 의원 등 국회의원 50여 명이 호주제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을 담은 의원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여성들은 환호했다. 법무부도 발빠르게 움직여 지난 달 22일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단위 대신 국민 개개인이 신분을 등록하는'개인별 신분등록제'를 골자로 하는 민법개정안 입법예고안 초안을 내놓았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호주제 폐지는 그야말로 시간 문제인 듯 보인다. 그러나 국회 안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계속되는 국회의 공전과 정치, 경제적인 현안들에 밀려 호주제 폐지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 되었다. 그런 중에 지난 8월 11일 열린 민법개정안이 처음으로 심의되던 법사위 회의에 대한 본지 기자의 취재기사(739호)는 절망스럽기조차 하다.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 15명 중 단 4명만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고 명확한 반대의견도 4명이며 나머지 의원들은 모두 유보적인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사위 소속 의원의 과반수 이상(8명)이 한나라당 의원들이며 한나라당이 호주제 폐지에 매우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이오경숙 여연 대표 등 여성시민단체 대표들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도 최 대표는 호주제의 당분간 유지론을 강조하며 국민의 정서를 감안해야 한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본지의 기사 이후에 한겨레신문도 법사위 소속 의원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결과를 발표하면서 올해 안 법안 통과 전망이 어둡다고 논평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기본제도로 유지되어 왔던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에 대해 일정 정도 저항이 따르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호주제 폐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일부 여성운동계의 주장”이니 “근본을 흔드는 일”이라는 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 호주제 유지쪽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는 한나라당에게도 도대체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고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호주제 폐지는 국민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다. 그 여론의 소리에 국회의원들이 더 성실하게 귀 기울이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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