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구니회 모습.
전국비구니회 모습.

 

“만물은 평등한데 인간이 불평등해서는 안 된다.” 조계종 총무원장스님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인간 평등과 해방을 강조한 불교이기에, 어떠한 종류의 차별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와 다르다.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단(이하 종단)은 특히 여성 성직자인 비구니스님에 대한 차별도 일상화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한 비구니스님을 처벌하겠다고 종단이 나서서 불교인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전국비구니회 합법성 요구 글에서
‘임의단체’라는 표현 문제 삼아

사태는 지난 8월15일 종단 기관지인 ‘불교신문’에 비구니를 대표하는 종회의원이자 ‘불교신문’ 논설위원인 한 비구니스님이 고정 칼럼란에 “전국비구니회를 보는 비구스님들의 인식”이라는 글을 싣고부터이다. 이 글은 6000여 비구니스님들의 모임인 ‘전국비구니회’의 대표성을 종단의 법으로 인정해 달라며, 붓다의 평등사상은 물론 사회의 성평등 흐름에 맞게 비구니도 종단 운영의 공동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했다. 그리고 ‘전국비구니회’가 임의단체라서 권리에 제한이 있다면, 대한불교조계종도 국가법상으로 임의단체라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현재 조계종단의 출가자는 약 1만2000여명으로, 비구니스님과 비구스님의 숫자가 비슷하다. 국회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중앙종회가 최고 의결기구로, 이 종회의원 81명 가운데 남성출가자인 비구스님은 71명, 여성출가자인 비구니스님은 10명으로 종단법에 정해져 있다. 종법으로 성차별을 당연시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비구니회’는 이 비구니 종회의원 10명을 선출하는 명실상부한 비구니들의 대표 단체이지만, 임의단체라며 종단 지도부는 그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비구니회’의 합법성을 요구하는 글을 쓴 것인데, 일부 비구스님들은 핵심 주장은 거론도 않고 조계종단이 임의단체라는 표현만을 문제 삼았다. 이것이 종단을 욕보이는 해종 행위라는 것인데, 실상은 비구니승가의 권리 주장을 막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비구니스님은 해당 신문에 사과문을 냈다. 뿐만 아니었다. 사회에서 검찰이라고 할 수 있는 호법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논설위원 사퇴 압박도 받고, 해당 칼럼도 삭제되었다. 참으로 심각한 인권탄압이자 언론탄압이다.

성범죄·도박 등 범죄 연루 비구스님 
중앙종회 등에서 징계 요구한 적 있나

더 황당한 것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종회 비구의원스님 20여 명이 중앙종회에 징계동의안을 제출했는데, 이는 종회의원을 사표내고 나가라는 압력이라 할 수 있다. ‘전국비구니회’ 부회장이자 종회의원이, 그 단체의 합법적인 지위를 요구하는 글을 종단 기관지에 쓴 것을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성범죄, 도박, 사기, 위장결혼 등 사람들을 경악케 한 범죄에 연루된 비구스님들도 있었지만, 중앙종회나 실세 비구스님들이 한 목소리로 징계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종단 지도부의 이러한 황당한 반응의 원인은 비구니 차별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비구니들의 단합된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단 지도부는 일부 순종적인 비구니스님에게 토콘여성의 지위를 부여하고, 인사권으로 비구니스님들 간의 대립과 반목을 부추기곤 했다. 그리고 비구니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감히 비구니가…”라며 괘씸죄를 적용해서 처벌하거나 해종 분자로 낙인찍었다. 이 때 과도한 처벌은 필수적인데, 불복종의 대가를 본보기로 보여줌으로서 마녀사냥처럼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해서이다.

여남 출가자가 동일한 교육과정과 수행 방식으로 생활하면서 비구니를 차별하는 것은 깨달음을 성취한 위대한 비구니들을 모욕하는 일이며, 불교가 성평등한 세상에 뒤처지는 고리타분한 종교로 지탄받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종단은 하루빨리 징계안을 철회하고, 붓다의 가르침을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든 것을 참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종단 내 성평등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리고 ‘전국비구니회’는 1968년 의존과 맹종의 관습을 개혁하겠다는 높은 기개로 출발한 ‘우담바라회’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지혜와 자비심으로 성평등한 종단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6000여 비구니스님들이 민주적인 수행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면서, 1994년 개혁종단에서부터 그토록 염원했던 비구니 참종권 확대를 위한 여정에 대다수 불교인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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