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히로히토 일왕 유죄”… 여성연대가 일군 ‘2000년 여성법정’
“‘전범’ 히로히토 일왕 유죄”… 여성연대가 일군 ‘2000년 여성법정’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0.12.07 15:46
  • 수정 2020-12-08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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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맞은 ‘2000년 여성법정’
일본군 성노예제 심판 위해
세계여성들이 일군 ‘시민법정’
8개국 피해자와 1000여명 활동가
10년에 걸친 활동 국제적 결실
구속력 없었지만 파급력 대단해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관악캠퍼스 아시아연구소에서 일본군위안부 연구회가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공공 기억과 확산' 기념행사를 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를 이끌어낸 법정 한국위원회 실무단과 한국 측 검사로 참여한 여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한국염 한국위원회 서기(전 정대협 대표), 지은희 당시 한국위원회 홍보기획위원장(전 여성부 장관), 양현아 당시 한국 측 검사(서울대 교수), 김윤옥 당시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전 정대협 대표). ⓒ홍수형 기자

 

“2000년 여성국제법정의 중요한 의미는 전 세계적인 시민 사회 운동이 연대했다는 점입니다. 또 일본군 성노예제의 피해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관련 국가들과 일본 정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이하 2000년 여성법정) 당시 재판장을 맡았던 크리스틴 친킨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명예교수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2000년 국제법정의 역사적 의의를 이같이 설명했다. 2000년 여성법정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일본군‘위안부’연구회(회장 양현아)는 지난 4~5일 이틀간 ‘2000년 여성국제법정의 공공 기억과 확산’을 주제로 기념행사를 열었다.

2000년 국제법정은 일본군 성노예제의 가해 책임자를 재판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책임을 물은 민간 법정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와 일본 ‘VAWW-NET(바우넷)재팬’을 비롯해 10개국 여성운동가와 법률전문가들이 모여 전범 25명을 기소했다. 피해여성 64인이 증인으로 나섰다. 태평양전쟁 책임을 물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1946~1948년)에서 기소되지 않았던 히로히토 일왕도 전범으로 기소했다. 마침내 12월 7일 개정식을 시작으로 6일에 걸친 재판 끝에 국제법정 판사단은 일왕 히로히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예비 판결을 내렸다. 이듬해 12월 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아시아 피해국들이 공동 기소한 히로히토 일왕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일본 정부에 진실 규명과 사죄, 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을 권고한 최종판결이 내려졌다.

<천황 히로히토는 공통기소장 중 인도에 반한 죄의 소인(訴因)1과 소인2인 강간과 성노예제에 대한 책임으로 유죄로 인정한다.>

- 2000년 여성법정 도쿄판결문 중

 

2000년 1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민간 법정으로 열린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모습. ⓒ정의기억연대
2000년 1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민간 법정으로 열린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모습.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와
세계 여성들의 연대가 뒷받침

4일 문화행사에서는 당시 법정에 한국 측 검사와 실무단으로 참여한 이들도 오랜만에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영상 메시지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 여성들은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은 피해여성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공공의 기억으로 만들어 결국 일본군 성노예제를 공식 역사로 새겼다.

이들은 2000년 여성법정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피해생존자들이 증언에 나서 일본군‘위안부’를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로 국제사회를 통해 공론화했다는 점, 세계 10개국 시민연대로 일궈냈다는 점을 꼽았다.

당시 수석검사인 패트리샤 비즈어 셀러스 국제형사재판소 젠더 특별자문관은 “시민활동가들은 확고한 결단력으로 모의법정이었지만 국제적 절차를 만들어 군 성노예제 부인을 반박하려 했”으며, “잔혹한 진실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와 대담함” 덕분에 2000년 여성법정이 굳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수석검사인 유스티나 돌고폴 호주 플린더스 대학교 법학과 교수도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국내, 지역, 세계 여성 활동가도 세계2차대전 이후 젠더 범죄를 처벌하는데 실패했던 국제 사법체계를 바로잡고자 했다”고 말했다.

국제법정 한국위원장인 윤정옥 전 정대협 상임대표는 “세상의 질서가 말하는 법정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인간 양심의 재판으로써의 법정”이라고 평했다.

국제법정 한국위원회 공동대표인 김윤옥 전 정대협 상임대표는 법정을 처음 제안한 고 마츠이 야요리(1934~2002) 바우넷 재판 대표를 언급하며 “야요리 선생은 제게 팩스로 ‘나는 이 법정에 나의 생명을 바쳤다’고 고백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기렸다. 야요리 대표는 기자 출신으로 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위안부’를 처음 세상에 알렸고 바우넷 재팬(전쟁과 여성폭력에 반대하는 네트워크)을 만들어 여성법정을 열어 히로히토 일왕의 전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신으로 여성법정을 성공시킨 그는 최종판결이 나온 이듬해인 200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관악캠퍼스 아시아연구소에서 일본군위안부 연구회가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공공 기억과 확산' 기념행사를 열고 축하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윤정옥 전 정대협 대표가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관악캠퍼스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공공 기억과 확산' 기념행사에서 영상 메시지로 2000년 여성법정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 했다. ⓒ홍수형 기자

 

여성법정 이후 과테말라·이란 등서
시민의 힘으로 모의재판 열려

20년이 흘렀으나 2000년 여성법정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2000년 국제 법정 한국 측 검사였던 양현아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여성법정에 대해 “시민에 의한, 시민의 법정이었으며 초국적 여성주의 연대의 장이었다”면서 “시민법정이기 때문에 판결에 대한 강행력은 없었으나, 인식, 규범을 이뤄 느리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셀러스 특별자문관도 “국제법정의 영향으로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이란 등에서 성폭력과 성노예제 범죄를 다룬 시민법정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는 아프리카에서 전시 여성노예제 관련 모의법정이 열릴 예정”이라며 “여성국제법정의 후손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성법정에 전시 성폭력 피해자로 증언에 나섰던 과테말라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국에서 시민법정을 열기로 하고 마침내 2010년 여성 피해자 100여명이 참여한 ‘과테말라 여성인민법정’을 이끌어낸다. 과테말라 치안부대에 의한 강간에 대해 유죄 판결도 받아냈다.

김윤옥 전 대표는 “여성법정은 미래사회를 위한 평화와 희망의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경색된 남한과 북한 관계에 연대 모델이 되고, 한국과 일본의 최악의 갈등 속에서 한일 시민연대의 모델이 되어 평화와 희망의 씨를 뿌리고 있다”고 했다.

돌고폴 교수는 ‘2000년 여성법정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법정 문서가 다른 ‘위안부’ 관련 자료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기록 기억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당시 한국위원회 기획홍보위원장을 맡은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은 “일본은 법적 책임 인정, 책임자 처벌 등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퇴행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우리도 2015년 한·일 간 잘못된 합의를 하고, 당시 합의를 반대한 정대협 활동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시간 걸리더라도 일본군 성노예제는 정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시민과 정치인의 협의로 베를린 소녀상의 존치가 결정됐다. 운동은 이렇게 발전하고 계승, 확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여성법정에 참여했던 이용수 인권운동가는 기념 영상을 통해 “제 나이 아직 93세, 운동하기에 딱 좋은 나이”라며 “끝까지 여러분과 같이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기념행사에서는 2000년 여성국제법정 영상 다큐멘터리와 한국·대만·중국·필리핀 피해 생존자와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됐다. 고인이 된 피해자의 넋을 기리고 정의의 실현을 기원하는 추모 행사도 이어졌다.

다음은 2000년 국제법정 이듬해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00년 국제법정 최종판결문 중 마지막 단락이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에게 저질러진 범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저질러진 범죄 중 가장 알려지지 않고 보상받지 못한 범죄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희생자들을 위한 박물관도,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여성들을 위한 무덤도,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도, 일본군 성노예와 심각한 성범죄와 잔혹행위에 대한 판결도 없었다.

따라서 본 재판정은 이 판결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제도하에 희생당한 여성들을 기리려고 한다. 판사단은 고생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산산이 부서진 삶을 재건하고, 공포와 수치를 이겨 내고 세계를 향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생존자들의 강건함과 위엄을 인지한다.

정의를 위해 앞으로 나선 많은 여성들은 이름 없는 영웅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새겨진 이름은, 고통 받은 여성들이 아니었다. 고작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들을 기소한 남성이었다. 이 판결문은 증언대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최소한 4일간은 잘못된 일을 단두대에 올리고 진실을 왕좌에 앉힌 생존자들의 이름을 병기하는 것이다.> 

-1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000년 국제법정 최종판결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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