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성폭력 녹화진술 증거로 채택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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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아동 법정세우기는

아동 인권 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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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본사를 찾은 김씨가 재혼한 남편에게 딸이 성폭행 당했다며 관련 자료를 보이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아동들이 당할 수 있는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찰청이 지난 7월부터 성폭력 아동 진술녹화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나 경찰의 수사자료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아 법률가들의 인식전환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검사에 따라 영상물 증거를 채택하도록 명시해, 피해아동의 녹화진술이 증거로 인정되려면 관련법 개정과 함께 판·검사들이 '아동의 입장'에서 증거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은 근친아동 성폭력은 친인척인 가해자와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아동이 피해상황을 재현하지 않도록 녹화진술을 증거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요구가 높은 가운데, 최근 법원이 근친 성폭력 피해아동의 진술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에 대해'피의자의 범죄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피해아동 인권 무시 처사

가족과 함께 영국에 유학간 A(13)양은 방학을 맞아 작년 말 고모집을 방문했다가 고모부 안모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A양은 지난 2월 고모부의 처벌을 위해 엄마와 함께 한국에 입국,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안씨가 구속된 것을 확인한 후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A양 성폭행 사건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 7단독 손주환 판사가 A양의 법정출두를 요구하며 피의자를 석방, 여성단체 등이 석방 취소를 요구한 바 있다. <본지 730호>

검찰은 당시 안씨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뒀으나 영국 경찰로부터 사건 직후 A양의 진술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확보, 안씨에 대해 준강간치상 혐의로 지난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범죄 입증이 부족하다며 안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으며 영장이 기각된 다음날 검찰은 안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준강간치상 혐의로 추가기소했다.

또한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지법 309호에서 의붓딸을 수년 동안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노모(49)씨에 대한 2차공판을 진행하면서 다음달 피해아동 S양의 공판을 결정, 귀추가 주목된다. 노씨는 지난 94년 한국계 일본인 김모(43)씨와 결혼한 이후 김씨와 김씨의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 S(당시 5세)양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본지 743호>

A양의 변호인인 강지원 변호사는 “비디오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영장을 기각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성폭력 피해아동을 법정에 세워, 직접 말로 들어야만 증거가 된다는 발상 자체가 아동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다”고 주장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84조는 '증인신문을 하는 경우 판사는 직권 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그 과정을 비디오테이프 등 영상물로 촬영할 것을 명할 수 있다(제10조 제1항)'고 규정돼 있으며 '이 영상물에 수록된 범죄신고자 등의 진술은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다(제3항)'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판사의 재량'이 아닌 '의무조항'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유경희 한국여성민우회 상담소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성폭력 피해아동의 진술녹화 자료가 유죄 입증의 중요한 증거로 채택된다”면서 “성폭력을 당한 아동이 시간이 흘러 피해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진술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진술을 녹화한 비디오는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유 소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은 “판사가 재판 초기에 피해아동의 말을 듣고 난 이후 부모가 녹화비디오를 가지고 재판을 하며 판사는 비디오 녹화자료를 유죄증거로 채택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찰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아동 진술녹화 제도의 결과는 증거채택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김강자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진술녹화 제도를 실시한 지난 7월 한 달 동안 피의자 구속률은 83%로, 같은 기간 전체 성폭력 범죄의 피의자 구속률이 41%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며 “이 제도는 아동의 특성상 일관성이 부족한 진술로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는 사례를 없애기 위해 수사단계에서 진술을 녹화, 피해아동과 가족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둔다”고 말했다.

법정진술 또 다른 폭력

'아동성폭력 피해자 가족모임'은 지난 5월 인권위에 “아동성폭행 신고 즉시 수사기관이 피해아동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 그 결과를 증거능력으로 인정하고 ▲검사가 피해아동의 1회 진술을 증거보전 청구하며 ▲성폭행 사실이 인정된 경우 가해자가 치료비를 부담하도록 인권위가 권고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서를 냈다.

송영옥 피해자가족모임 대표는 “현행법상 증거를 보전하지 않으면 증거사용이 곤란할 때 검사가 증인신문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아동성폭력 수사와 관련해서 증거보전청구를 하지 않는 것이 관행인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덕화씨는 “가족 친인척 등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당하는 친족간 성폭력은 피해아동에게 치명적인 상처”라며 “장기적인 상담과 치료를 통해 안정을 찾아야 하는 아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나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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