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변희수의 용기 잊지말자” 추모 물결...거대 양당은 조용
“김기홍·변희수의 용기 잊지말자” 추모 물결...거대 양당은 조용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1.03.09 11:21
  • 수정 2021-03-09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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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활동가 등 각계 애도·분노 표해
정치권도 기자회견 열고 추모...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커져
거대 양당은 침묵하거나 개별 의원 추모에 그쳐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소수자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과 변희수 전 육군 하사. 커밍아웃 후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성소수자들이 최근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났다. ⓒ여성신문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소수자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과 변희수 전 육군 하사. 커밍아웃 후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성소수자들이 최근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났다. ⓒ여성신문

“저의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모든 성소수자 군인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23) 전 육군 하사가 2020년 1월22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결국 군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약 1년 뒤 세상을 떠났다. 성전환 수술 이후 강제 전역 처분을 받고, 전역 취소 소송 첫 변론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사망이 알려지기 열흘 전인 지난 2월24일,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인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는 “소수자들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고 싶다”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 성소수자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이전엔 초·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고, 교사의 삶이 좋아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끝내 교단에 다시 서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커밍아웃 후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성소수자들이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났다. 이들과 함께 활동했던 동료 인권활동가들은 슬픔과 분노를 표했다. 각계에서 애도와 안타까움의 목소리,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꿈이었다는, 부사관이 되어 뿌듯했다는 변희수 하사를 기억한다. 차별 없는 군을 만들겠다며 웃음 짓던 그를 기억한다.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육군본부가 전역시켰을 때, 멈추지 않고 다시 용기를 낸 그를 기억한다. 그 용기에 기대 조금은 숨 쉴 것 같았던 우리를 기억한다”,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행동해야 함을 기억한다”는 추모 논평을 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두 분 성소수자의 죽음은 자살이라기보다 소수자들에게 숨 쉴 공간마저 거부하고 있는 사회적 타살”이라며 정부와 국회를 향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도 추모 논평을 발표하고 “수많은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은 변 하사님의 용기 있는 선택을 보며 힘을 얻었고, 위로를 받았으며, 우리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금 여기에서 공유할 수 있었다”며 “트랜스젠더는 지금도 당신의 곁에서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가족으로, 지인으로, 노동자로, 그리고 군인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육군이 변 전 하사의 사망에 대해 ‘민간인의 사망에 군이 입장을 낼 것 없다’고 선을 그은 일, 국방부가 애도를 전하면서도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제도 개선 검토는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고 밝힌 일을 비판했다. 이들은 “군이 변 하사에게 전해야 할 것은 애도가 아닌 사과다. 핑계가 아닌 대책이다. 이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대책을 우리의 몫으로 다짐한다”고 꼬집었다. 또 “당당한 모습의 멋진 부사관, 변희수 하사.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성별 고정관념이 가장 팽배한 집단인 군을 향한 고 변 하사의 용기어린 결단과 행동은, 노동 현장에서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고, 심지어 구직 과정에서조차 성별이분법적 시각에 검열당하는 것에 지쳐버린 트랜스젠더 당사자들과 그 부모에게 큰 힘이자 위안이자 희망이었다”며, “희망을 말하기 어려운 이 나라에서도, 살아 있자, 누구든 살아 있자”고 당부했다.

트랜스젠더인 가수 겸 배우 하리수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변 전 하사의 부고 기사를 캡처해 올린 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썼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참석자들이 5일 국회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고 변희수 하사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참석자들이 5일 국회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고 변희수 하사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녹색당이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변 하사를 추모하며 '성소수자 존엄과 생존권 짓밟은 육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녹색당
녹색당이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변 하사를 추모하며 '성소수자 존엄과 생존권 짓밟은 육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녹색당

 

정치권도 추모...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커져
거대 양당은 침묵하거나 개별 의원 추모에 그쳐

정치권에서도 애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당은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변 하사와 김 위원장의 명복을 빌었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차별과 혐오라는 가해를 묵인하고 방치한 사회적 타살이다. 또 다른 변희수가, 김기홍이 오늘도 ‘나’라는 존재로 그대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절규하고 있다. 더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늦출 일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동료 의원들에게 “우리가 소중한 사람들을 더 잃어버리기 전에 차별받는 사람들에게도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일깨워달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녹색당도 4일 국방부 앞에서 변 하사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싸움으로 더 나은 세상이 오길 기대하던 고결한 청년이, 끝내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며 애도했다. 녹색당은 앞서 김기홍 씨를 추모하며 “김기홍은 상처와 고통이 자신을 삼켜버리지 못하도록, 좋은 활동가의 밑거름이 되도록 애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많이도 지쳤던 모양이다. 성별, 성별표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잔인하고 무지한 폭력이 얼마나 가혹하고 끔찍한지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이른 휴식을 애석하지만 이해해 주려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당 차원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4일 권지웅 민주당 청년대변인이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깊이 느낀다”는 4줄짜리 논평을 냈다. 박성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5일 “혐오와 차별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 “정치는 사회적 연대 실현이라는 근본 소명에 충실해야 한다. 변 하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만이 SNS에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정말 국회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적어도 이런 아픈 죽음은 막으려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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