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여의도동 1번지] 류호정을 위하지 않는 변명
[기울어진 여의도동 1번지] 류호정을 위하지 않는 변명
  • 끝순이 전 국회페미 총대, 전 국회 보좌진
  • 승인 2021.03.09 10:52
  • 수정 2021-03-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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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경 ⓒ뉴시스·여성신문
국회 전경 ⓒ뉴시스·여성신문

류호정 의원실 보좌진 부당 면직 파문을 보며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류 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보좌진 스스로가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비다’라고 자조하게 한 갑질 고용 문화를 만들고, 뿌리내린 사람들의 이름은 어디 가고, 국회의원 배지를 단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류 의원이 비판의 화살을 다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보좌진 협의회는 류 의원이 “듣도 보도 못한 꼰대질”을 했다며 꼬리 자르는 성명을 냈다. 그 ‘꼰대질’을 매일 듣고 보고 직접 체험하는 자당의 보좌진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입장 발표부터 류 의원을 ‘괘씸하게’ 여기던 더불어민주당 일부 당원들은 문제의 본질을 빗겨난 비방성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들을 진정으로 분노하게 하는 것이 보좌진 부당 면직인지, 류 의원이 민주당의 뇌관인 권력형 성추행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해 왔기 때문인지 의문스럽다.

만일 이 문제가 거대 정당 다선 의원실에서 터졌다면, 각 당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로 할 말이 없는 처지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해당 인사는 보좌관이 처리했다, 의원은 몰랐다” 식의 입장문을 내는 것으로 대충 수습됐을 수도 있다.

국회 보좌진들의 익명 투고 페이스북 페이지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엔 류 의원을 성토하는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모든 국회의원이 뼈에 새겨야 하는 귀중한 발언이 넘쳐난다. 그러나, 보좌진 부당 대우 문제가 대나무숲의 단골 주제였음에도 이례적으로 이번에만 국회의원의 실명이 거론됐다는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1대 국회에서 류호정 의원실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유명하다. 의원이 직접 보좌진과 교대로 민원전화를 받고, 호칭을 “의원님”, “보좌관”이 아니라 이름에 님을 붙여 사용한다. 보좌진을 면직할 때, 류호정 의원실처럼 몇 달에 걸쳐 의사를 통보하며 타협의 모양새를 갖추려 한 곳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다.

때문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밤낮 휴일 없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고용불안정 문제로 절망하는 당사자라면, 개중 사정이 낫다고 하는 의원실에서 이 문제가 터져 전국적으로 공론화되는 모습을 보다 유심히 살펴봐야 했다. 보좌진들이 희망하는 것은 고용 문화의 쇄신이지, 본회의장에 원피스를 입고 온 청년 의원에 대한 못마땅함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모습도 안타깝다. 이 일을 류호정 의원실의 개별적인 잘못인 것처럼 오해되도록 방치하고 있다. 직무 관련성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직책 당원이니 고용하도록 강요한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정의당 전국 조직과 원내 간 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류 의원이 오랫동안 헌신한 당원의 존재를 좀 더 귀중하게 여기고, 그의 능력과 경험을 잘 발휘할만한 직무를 함께 고민했더라면, 해당 보좌진은 오랜 현장 경험과 조직력을 발휘해 정의당의 철학과 가치를 실현하는 데에 기여했을 수도 있다.

류호정 의원실의 보좌진 면직은 잘못됐다. “보좌진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최초의 입장문은 사실 여하부터 틀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도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대법원 판례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보좌진은 근로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민의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국민이다. 의도가 잘못 전달됐다는 해명도 구차하다. 면직 사유를 일일이 들어선 안 됐다. 해당 보좌진은 전국적으로 불성실한 노동자로 낙인찍혔다. 반년 밖에 함께 일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다.

앞으로 류 의원이 정의와 인권, 노동자의 권리를 외칠 때마다 자격 없다는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국회의 그 누구보다 노력해왔기에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방법이 없다. 지금은 자격이 없다. 그러나 류호정 의원이라면, 기득권의 전당 안에서 곪을 대로 곪은 문제들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러한 기대와 희망에 앞으로 좋은 정치로 보답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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