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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수잔 브라이슨 지음·여성주의 번역모임 '고픈'/인향출판사/13,000원

2002년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동안 신고된 강간범죄 건수는 무려 6,119건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강간 신고 비율을 2.2%로 보는 견해를 따른다면 대략 2분마다 한 건씩 강간사건이 발생하는 수치라는 얘기다.

비록 추정에 의한 수치이지만 이와 같은 통계는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성폭력당할 가능성을 늘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 강간 피해 여성들은 그와 같은 사건을 겪고 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당한 것일까? 이 책은 성폭력 피해 여성이 성폭력 이후를 살아가는 것은 그녀 개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인식을 문제삼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성폭력의 정의와 실태, 예방과 관련된 연구 차원의 학술서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현실 삶과 회복을 다루는 몇 안 되는 성폭력 관련 단행본이다. 1장 '성폭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저자가 실제로 당한 성폭력 이야기와 성폭력을 당하고 난 뒤 철학자였던 자신이 갖게 된 철학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다. 2장 '철학은 개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에서는 1장에서 보여준 기존 철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여성주의적 접근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3장 '주어진 삶을 넘어서'와 4장 '기억이라는 행위'는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즉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것이 성폭력 피해에서 회복되는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5장 '망각의 정치학', 6장 '다시 말하기'에서는 성폭력을 포함한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에 트라우마 이야기가 갖는 역할을 말하고, 성폭력을 이야기를 하는 일이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그 폭력의 여파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피해자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일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성폭력이 어떤 식으로 한 사람의 삶과 자아를 파괴하고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빌어 말한 수잔 브라이슨은 다트머스 대학의 철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여성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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