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중심 인물 정경주 여사의
외손녀 김영주씨 대구여성가족재단에 은패물 기증
전국 최초 여성 국채보상운동 앞장선 조직 이끌어
100년 넘게 ‘서병규의 처 정씨’로 불려왔으나
대구여성가족재단, 족보 연구해 이름 되찾아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정경주 ⓒ대구여성가족재단
국채보상운동에 여성 참여를 독려하는 격문을 발표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중심인물 정경주 여사. ⓒ대구여성가족재단

1907년 2월 23일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중심 인물 정경주를 비롯한 7명의 여성들은 "나라를 구하는 일에 남녀가 다르지 않다. 여성도 나라 빚을 갚는 일에 동참해야한다"는 취지를 담은 ‘경고 我(아) 부인동포라’는 제목의 격문을 발표했다. 

국채보상운동에 여성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문을 발표한지 115주년이 되는 2월 23일 정경주 여사의 외손녀 김영주 전 계명문화대 교수가 대구여성가족재단(대표 정일선)에 은패물을 기증했다. 

김영주교수가 은패물을 기증하고 대구여성가족재단 정일선대표가 정경주의 사진과 감사ㅍ패을 전달했다. ⓒ권은주 기자
정영주 여사의 손녀 김영주 교수가 은패물을 기증하고 대구여성가족재단 정일선 대표가 정경주 여사의 사진과 감사패를 전달했다. ⓒ권은주 기자

김 교수는 “1910년 전후에 사용됐던 국채보상운동의 상징물인 은비녀와 은반지를 대구여성가족재단에 기증하게 돼 매우 기쁘다”라며 ”외할아버지 성함은 알고 있었지만 외할머니는 연일 정씨라는 것밖에는 몰랐는데 재단에서 이름을 찾아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할머니를 많이 닮아 특별히 저를 예뻐하셨는데 ‘정경주’라는 외할머니의 이름을 찾아준 감사의 표시로 은패물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는 “115주년을 맞는 날 기증식을 열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김 교수와 첫 통화에서 느꼈던 떨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역사 속 인물로만 생각했던 정경주 여사를 입체적인 실존 인물로 기억하고 기릴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라며 “기증한 은패물은 여성국채보상운동의 상징물인 만큼 (사)국채보상기념사업회에 대여해 향후 기념관과 기념도서관 리모델링을 마치면 다양한 전시 등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은패물 기증식에 참석한 김영주 교수 가족. 왼쪽에서 질녀 김정실, 김영주 교수, 부군 이준재, 아들 이정민.   ⓒ권은주 기자
은패물 기증식에 참석한 김영주 교수 가족. 왼쪽에서 질녀 김정실, 김영주 교수, 부군 이준재, 아들 이정민 그리고 외할머니 정경주 사진. ⓒ권은주 기자

대구여성가족재단은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7명의 이름이 ‘서병규의 처 정씨’, ‘정운갑의 모 서씨’로 기록된 것을 2015년부터 남성들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족보 등을 활용해 6명의 이름을 찾아내는 등 여성국채보상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조명해왔다.

김 교수는 언론에 보도된 외할머니 정경주 여사의 사진을 보고 2020년 대구여성가족재단으로 연락하면서 이날 기증식을 갖게 됐다. 

정 대표는 이날 김 교수에게 "남일동 7부인의 정신을 밝히고 기리는데 도움을 주고 여성 국채보상운동 참여의 상징물인 은패물을 기증해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김영주 교수 가족과 대구여성가족재단 임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권은주 기자
김영주 교수 가족과 대구여성가족재단 임직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권은주 기자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국채보상운동에 남성들이 여성을 논외로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전국의 여성을 향해 분발해 일어날 것을 촉구하며, 비녀와 반지를 뽑고 깊숙이 숨겨뒀던 패물을 국채보상금으로 헌납했다. 그 후 전국의 수많은 여학생들과 가정의 부인들, 기생에 이르기까지 남성들 못지않게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50여개 단체가 만들어지는 등 여성 국채보상운동 조직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최초의 근대 여성운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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