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원, ‘여성 임신중지권 인정’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
텍사스 등 약 13개 주서 임신중지 금지돼
바이든 대통령 “슬픈 날...임신중지권 법제화해야”
미국에서 ‘낙태죄’가 부활했다. 1973년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미 연방대법원이 50여 년 만에 결정을 뒤집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약 13곳에서 즉시 임신중지가 금지됐다. 이외에도 여러 주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이 권리를 제한당하거나 범죄자로 몰릴 전망이다.
임신중지권을 옹호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은 슬픈 날”이라고 했다. “임신중지권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의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폴리티코,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여성의 임신중지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찬성 5명 대 반대 4명으로 번복했다. 미시시피주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주 법률 위헌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올라간 결과다.
이제 각 주의 법에 따라 임신중지권 보장 범위가 달라진다. 아칸소, 미시시피, 텍사스 등 13개 주에서는 즉각적으로 임신중지가 금지됐다. 앨라배마, 오하이오, 조지아 등 5개 주에서도 몇 주에서 몇 달 사이에 임신중지가 금지될 전망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1년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 ‘로’(가명)가 텍사스주 정부에 임신중지를 허용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끌어냈다. 이후 미 여성들은 임신 약 24주까지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5월 미 연방대법원이 이를 뒤집는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한 초안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미국 전역에서 임신중지 찬반 진영이 시위를 열고 대립하며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임신중지권에 반대하는 보수 성향 대법관 3명(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을 임명해, 연방대법원이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편향성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보수 성향 대법관 5명이 로 대 웨이드 판례 철회를 지지했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반대했다. 남은 1명은 보수 성향의 존 로버트 대법관으로, 이번 미시시피주의 임신중지 금지는 합헌이라는 부분만 언급했다.
뉴요커 기자 지아 톨렌티노는 이날 ‘우리는 로 대 웨이드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임신한 여성과 의료인, 조력자 등에 대한 국가의 감시와 범죄화가 만연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탄했다.
미국 내 파장이 거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 연방대법원은 약 50년간의 선례에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을 뿐 아니라 개인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사적인 결정을 정치인들과 사상가들의 변덕에 맡겼다. 미국인 수백만명의 자유를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오늘 내 가슴이 무너진다.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을 내릴 기본권을 잃어버린 이 나라의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무너진다”며 “오늘은 우리의 가슴이 무너져도, 내일은 일어나 정의로운 미국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일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시민들에게 대응을 촉구했다.
“여성의 선택권이 기본권”이라며 옹호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오늘은 우리 나라에 슬픈 날이지만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미국인들에게 임신중지권을 지지하는 의원들을 선출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