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190개국 대상 ‘여성, 기업, 법 2023’ 보고서
한국, 여성 임금 관련 법규 평가 25점으로 ‘최하’
“여성 24억명 차별… 50년 뒤에야 법적 성평등”

세계은행이 발표한 2023년 ‘여성·기업·법 지수’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85.0점을 기록해 65위에 이름을 올렸다. ⓒ여성신문
세계은행이 발표한 2023년 ‘여성·기업·법 지수’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85.0점을 기록해 65위에 이름을 올렸다. ⓒ여성신문

한국이 여성에 부여하는 경제적 기회의 수준이 세계 190개국 가운데 65위에 머문다는 세계은행(WB) 분석이 나왔다. 조사 결과, 전 세계적으로 여성에게 경제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는 나라는 14개국에 불과했다.

3일(현지시간) 세계은행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여성, 기업, 법 2023’ 보고서를 보면 190개국을 대상으로 여성의 경제적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제도를 평가한 여성·기업·법 지수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85.0점을 기록했다. 190개국 전체 평균 77.1점보다 불과 7.9점 높은 점수다.

한국은 ‘이동의 자유’와 ‘취업’, ‘결혼’, ‘자산’, ‘연금’ 등 항목에서 만점인 100점을 받았다. 자녀를 가진 여성의 직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 있는지를 살피는 ‘출산’ 항목에서 80점, ‘기업가 활동’에선 75점이 나왔다. 

세계은행이 공개한 ‘여성, 기업, 법 2023’ 보고서. ⓒ세계은행
세계은행이 공개한 ‘여성, 기업, 법 2023’ 보고서. ⓒ세계은행

한국은 여성의 임금과 관련한 법규를 평가하는 ‘임금’에서는 25점을 받아 최하 수준으로 평가됐다. 

임금 항목에서 한국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한 곳은 아프가니스탄(0점), 아제르바이잔(0점), 이집트(0점), 기니비사우(0점), 쿠웨이트(0점), 수단(0점), 시리아(0점), 우크라이나(0점), 서안·가자지구(0점) 등 9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경제참여, 정치적 권한 등을 토대로 산출한 성별 격차지수(GGI)에서도 대상 국가 146개국 가운데 한국은 99위를 기록했다. 특히 경제 참여 기회 영역에서 최하위권인 115위였다. 무엇보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2%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8800원을 받는다. 성별임금격차를 줄이는 특단의 법적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기록해 법적 성평등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국가는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등 14개국에 그쳤다. 미국은 91.3점으로 38위였고, 일본(78.8점)과 중국(78.1점)은 각각 104위와 109위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1970년 당시만 해도 45.8점에 불과했던 전 세계 평균 점수가 올해 77.1점으로 크게 올랐지만, 최근 들어서는 갈수록 개선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올해 전 세계 평균 점수는 작년(77.0점)보다 0.1점 오르는 데 그쳤다.

190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2022년에 성별 관련 제도개선을 한 국가는 18개국에 불과했다. 세계 곳곳에서 법제도 개선 노력이 봇물 터지듯 잇따랐던 2002∼2008년 정점을 찍은 이후 이른바 ‘개혁피로’가 가시화한 결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71.3점)와 아프가니스탄(31.9점)처럼 오히려 여성·기업·법 지수가 하락한 국가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거주지 선택권과 해외여행을 제한하고 남편에 복종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은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이 여성의 직업 선택을 제한하고 역시 출국을 제한한 것이 점수하락의 배경이 됐다.

연구진은 “전 세계에서 아직도 24억명에 이르는 경제활동가능 연령대 여성이 여성에 차별적인 법체계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면서 “지금의 개선 속도로는 완전한 법적 성평등 구현까지 최소 5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세계 경제 성장 둔화 국면에서 각국은 여러 위기에 맞서기 위해 생산능력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 피고용인과 기업가로서 경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은 국가경제를 더 역동적이고 탄력적이게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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