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으로 간 성폭력』 저자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더 낼수록 감형되는 ‘공탁 전략’ 새롭게 주목해야
법이 만능은 아냐...‘조직 내 해결’도 하나의 해법
“시민들의 방청연대·댓글연대가 피해자에게 큰 힘”
“또다른 피해자 없어야 하기에” 맞서 싸우는 피해자들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홍수형 기자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은 법시장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형사 공공 변호인 제도’와 ‘피해자 참가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민들의 방청연대와 댓글연대가 피해자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피고인은 평소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고 100회 이상의 헌혈에도 참여했다. (...) 피고인을 벌금 200만원에 처한다.”

법원은 봉사활동을 하고 100회 이상 헌혈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성추행한 가해자에게 벌금 200만원이라는 가벼운 처벌만을 선고했다. 반성문, 지인의 선처 탄원서, 봉사활동 증명서, 기부 증명서, 자발적 성교육 이수 등은 이제 ‘감형 패키지’로 불린다. 성범죄 가해자 전담법인(로펌)과 연결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신입 가해자들의 상담 글에 “할 수 있는 거 다 하세요”라며 선배 가해자가 ‘팁’을 공유하는 문화까지 생겼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던 저자 김보화 소장을 서울 대방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암담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피해자의 회복과 성폭력 사건의 진정한 ‘해결’은 어떻게 가능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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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찰청은 3월 14일 ‘진지한 반성’을 내세운 ‘꼼수 감형’을 엄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책에서 ‘사회적 유대관계’를 이유로 감형받는 터무니없는 사례도 많았는데 대검 발표에서 그 부분은 빠졌다.

“(진지한 반성으로 인한 감형이 줄어든 대신) 사회적 유대관계를 이유로 한 감형이 많아졌는지도 봐야 되고, 작년 말에 공탁 제도가 바뀌어서 가해자들이 그냥 돈을 맡길 수 있게 됐다. 진지한 반성에 관련된 걸 하도 많이 얘기하니까 그 부분은 전략적으로 줄이고 공탁 전략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공탁 금액이 많을수록 많이 감형되는데, 새롭게 주목할 지점인 것 같다.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 꼼수가 옮겨가고 바뀌고 하니까.”

- 피해자들이 법적 해결을 기대했다가 오히려 그 과정에서 2차 피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재판 과정은 본질적으로 피해자를 고통에 빠트리는 것일지.

“법이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측면이 있어 비판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법적 해결 과정을 통해서 임파워먼트되고 힘을 얻는 피해자도 굉장히 많다.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게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만한 일이야’ ‘네가 나한테 그렇게 함부로 할 만한 일이 아니야’라는 경험을 (가해자가) 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통쾌하게 생각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너무 결과에만 종속되지 말고, 법적 과정을 피해자가 좀 더 힘을 얻는 과정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홍수형 기자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홍수형 기자

-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법적 과정 이외에 어떤 대안을 상상할 수 있을지.

“‘조직 내 해결’이나, ‘공동체 내 해결’이라는 반성폭력 운동 흐름이 2000년대 초부터 강하게 있었다. 함께 규약을 만들고, 지키지 않으면 반성, 사과, 피해자 회복을 위해 뭘 할지 등을 논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다 법으로 해결하는 문화가 강해지고 있다. 요즘은 직장이나 대학 징계위원회에도 변호사나 노무사를 둬야 한다. 하지만 조직 내 성폭력은 ‘최협의설’(강간 등 성폭력에서 저항할 수 없는 수준의 폭력이나 협박이 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학설. 현재 판례의 입장)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 직장과 대학이다. 문화에 분명 문제가 있는 거다. 처벌도 필요하지만, ‘조직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뭘 할 건지’가 비는 것 같다. 그런 고민이 강화돼야 한다.”

- 그런 해결이 가능하다는 게 굉장히 꿈같이 느껴지는데.

“리더 그룹이 결심하면 너무 가능하다. 실제로 제가 자문했던 기업에서 ‘조직 내 해결’을 했었다. 다 같이 고민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리더 그룹이 어느 정도의 의지가 있느냐 문제다.”

- 법시장화 문제 해결을 위해 법률가와 정치인이 해야 하는 일은.

“먼저 형사 공공 변호인제도가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가 피의자로 수사기관 출석을 요청받는 때(수사 초기)부터 국선변호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가해자들을 시장 한복판에 나서게 하기보다 공공적으로 강화된, 질 좋은 변호를 국가로부터 받게 하자는 거다. 두 번째로, 피해자 참가제도가 있다. 일본이 대표적 모델로 언급되고 있다.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 주체로 참여해 검사 옆에 피해자가 앉고 직접 가해자에게 질문한다. (한국도) 피해자에게 발언권을 더 줬으면 좋겠다. 제도적으로는 변호사법이나 변호사 내부 윤리규정 강화가 있다. 지금 완화되고 있는데 강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로스쿨에서부터 인권 교육을 필수로 해야 한다. 지금은 인권법을 선택해서 하는 수준이다. 변호사들도 의무교육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성폭력 관련 교육은 안 한다고 한다. 판검사도 마찬가지다.” 

- 법시장화 문제 해결을 위해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실천은 무엇인지.

“방청연대. 너무 멋지다고 생각한다. 재판부가 실제로 굉장히 압박을 느낀다고 한다. 본인 시간이나 일정 맞춰서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 여성운동단체 회원이 돼서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또, 기사 ‘댓글 연대’를 제안하고 싶다. 성폭력 관련 기사에 피해자에게 힘이 되는 지지 댓글을 남기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김보화 지음, 휴머니스트출판그룹 펴냄) ⓒ휴머니스트출판그룹
『시장으로 간 성폭력』(김보화 지음, 휴머니스트출판그룹 펴냄) ⓒ휴머니스트출판그룹

-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사실 제일 마지막장 얘기를 가장 좋아한다. ‘피해자 너무 힘들다’로 끝나지 않게 마지막에 늘 피해자들이 얼마나 힘 있고 멋있는 존재인지 이야기한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 ‘이런 피해자는 내가 마지막이어야 된다’고 한다. ‘해결, 치유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내가 (겪은 성폭력과) 관련된 일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한다. 성폭력은 그렇기 때문에 너무 ‘정치적’인 일이다.”

- ‘여가부 폐지’ 등이 호명되며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정부의 공공연한 부정이 이어지는 요즘이다. 혐오와 백래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지난 몇 년간 많은 경험을 하면서 단단해졌다는 기운을 많이 느낀다. 힘을 가지고 피해자 얘기도 듣고, 연대를 계속해나갔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저를 포함한 페미니스트가 싸워온 과정과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로, 남성 중심적인 사법 질서와 담론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이 타자화되는 과정, 성폭력 가해자가 행위를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피해자화하는 논리, 성폭력 사건 해결의 의미와 조건 등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2016년부터 약 5년간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했고, 책의 모태가 된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젠더폭력연구소 소장으로 법조인 대상 강연, 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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